애들이 집밖에 안나간지 한달이 넘었다

왜냐면... 이 곳은 인도이기 때문이다.

첫째 딸과 둘째 딸 호비와 호지가 집 밖으로 안 나간 지 한 달이 넘었다.


문자 그대로 현관문 밖으로는 단 1센티미터도 내딛지 않고 지난 4월 19일부터 오늘까지, 한 달이 넘는 긴 시간을 집 안에서만 지내고 있다. 그렇다고 두 아이들이 사회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소위 '히끼꼬모리'는 아니다. 5주 전에 학교가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 이후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에도 계속 참여하고 있고, 숙제도 꼬박꼬박 제출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금 심신이 너무나도 지쳐있다. 매 순간이 짜증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한 달이 넘게 자기 방과 거실만을 오가는 답답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면 좋지 않냐고 말하려다가도 이내 단념하고 만다.


왜냐면... 이곳은 인도이기 때문이다.




뉴델리 주정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코로나 확산세를 꺾기 위해 4월 19일에 통행제한령(curfew)을 발표했다. 각급 학교가 등교를 제한하면서 호비와 호지가 다니던 학교도 자연스럽게 휴교에 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학교에 등교하는 것 이외에는 집 밖에 나갈 일이 없는 나라가 이 나라인데 집 밖을 나갈 유일한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


3월만 되어도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에, 외교 공관과 외국계 기업 주재원 그리고, 현지에서 돈 좀 있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우리 동네도 집 밖에만 나서면 소와 개가 거리를 활보하고, 동물들의 배설물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70년대와 80년대를 경험한 나와 아내는 ‘이 정도 악취쯤이야 ‘ 하면서 동네 시장에라도 잠깐씩 다녀오곤 하지만, 감수성 예민한 십대 소녀에게는 '어머머, 이건 정말 아니야’ 일수밖에 없다. 게다가 코로나 확진자수는 전 세계 1등을 달리고 있고 우리 교민과 주재원 중에서도 안타까운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으니 밖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이 이상한 거다.


아이들이 질색하는 게 하나 더 있다. 이곳 인도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꽤 기분 나쁜 버릇들을 가지고 있다. (유튜브에서, Russel Peters라는 인도계 캐나다 국적의 코미디언이 인도인들의 이러한 버릇에 대해 꽤 신랄한 농담을 한 것을 본 기억이 있을 정도이다.)


만약 그 대상이 '외국인 여성'이면 그들의 관심은 몇 배 올라간다. 두세 번 나랑 아내와 같이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갔던 아이들은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들의 '신체'를 향해 쏟아지는 인도 현지인들의 불쾌한 시선 테러에 질려서 '더 이상 산책 안 하겠다'라고 일찌감치 선언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이제 아이들에게 이 집은 한편으로는 든든한 성채이자 또 한편으로는 나갈 수 없는 감옥이 되었다. 아주 가끔 미세먼지 지수가 낮은 날이면 첫째 딸 호비는 자신의 아이폰을 들고 커다란 거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다. 밖으로 걸어 나갈 용기는 없지만 감옥 밖의 세상이 궁금하니 매번 똑같은 거리의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학교가 온라인 수업을 전환되면서 학생들은 물론 몇몇 선생님들마저 비행기를 타고 각자의 고향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빈자리가 늘어날 때마다 아이들은 말 수가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5월 중에라도 한국에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내는 하늘이 두쪽 나도 아이들이 결석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아이들 학기가 마무리되는 5월 말에 뉴델리를 떠나는 전세기를 예약한 이후 두 딸은 지금 1년 6개월 만에 드디어 한국으로 휴가를 가게 될 꿈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인도는 모든 게 다 끝날 때까지 절대로 안심할 수 없는 나라이다. 작년 여름에도 모객 절차를 진행하던 전세기가 무슨 이유에선지 출발 전에 인도 당국의 운행 불허 결정으로 한국으로 가지 못한 경우가 있다고 전해 들었다. 운항 며칠 전에 갑자기 탑승 인원수를 제한하는 바람에 몇몇 승객들은 급하게 직항 전세기가 아닌 환승편으로 갈아타느라 쌩고생을 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아이들은 지금 하루하루를 출소를 기다리는 죄수의 심정으로 조마조마하게 지내고 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PCR 검사에서 우리 식구 중 누구 하나라도 양성이 나오지는 않을지, 인도 당국의 운행허가는 제대로 나올지, 비행기는 예정대로 인도에 오기나 할 건지, 비행기가 무사히 인도를 떠날 수는 있을지...


우리나라처럼 뭐하나 확실한 게 없는 이곳 인도에서, 아이들의 시간은 지금 너무나도 천천히 흐르고 있다. 아이들의 애타는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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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집 앞을 산책하다 길 위에서 휴식 중인 소떼를 글쓴이가 직접 찍었습니다. 아... 그리고, 멀리 보이는 세련된 빌라의 정문 앞에 태평스럽게 누워있는 것은 소가 아닌 개입니다... 목줄 같은거요? 당연히 그런거 없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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