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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앱이 조금은 섭섭한 이유

우리의 식탁이 너무나도 편리하게 준비된다고 느껴질 때...

1주일간의 시설격리를 마치고 자가격리 숙소로 이동한 우리 가족에게 놀라운 신세계가 열렸다. 바로 ‘한국식 배달앱’이었다. 한국에서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강아지들도 한 번쯤은 다 사용해봤다는 ㅋㅍㅇㅊ, ㅂㄷㅇㅁㅈ, ㅇㄱㅇ 등의 앱을 이제야 뒤늦게 내려받았다. 아마 우리 가족이야 말로 대한민국 국민 중 가장 마지막으로 배달앱을 내려받은 가족이 아닐까 싶다.


하나둘씩 사용하다 보니 그 편리함에 매 순간마다 감탄하게 된다. 형형색색의 한식, 중식, 양식은 물론, 군침도는 빵과 간식까지 손가락으로 화면만 두세 번 살짝 건드려주면 끝이다. 요일마다 제공되는 각종 할인 혜택까지 한껏 활용하면 마치 ‘돈을 쓰면서 돈을 버는 듯한’ 느낌마저도 든다. 내 음식을 들고 오는 배달원이 언제 도착하는지도 분단위로 표시된다. 마치, '우리가 당신의 주문을 빠르게 배달하려고 이렇게까지 배달원들을 닦달하고 있어요!!!! 그러니 잠자코 기다리세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배달원들과 얼굴 마주칠 일도 없다. 초인종이 울리는 순간 문을 열어도 문 앞에 음식만 가지런히 놓여 있을 뿐 배달원의 모습은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부터 배달해주는 사람까지 단 한 명과 말 한마디는커녕 눈길 한번 마주치지 않고 우리 가족의 일용할 양식은 준비된다.




어렸을 적을 생각해보면 음식을 준비하는 행위는 정말 지난하고 길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거의 매일 동네 시장을 들려 그날 하루의 식재료를 구입하고, 구입한 식재료를 마지막 손질해야 했다. 대가족이었던 우리 집에서는 마늘, 생강, 콩나물, 열무, 멸치, 고사리 등을 다듬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바지런한 손놀림이 멈출 날이 없었다. 그러고 나서, 두 분이 부엌 안에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한 끼의 식사가 힘겹게 완성되곤 했다.


설사 한 끼의 식사가 나의 입맛에 안 맞더라도 그 한 끼를 위해 반나절을 종종거리신 어머니의 고단한 노동을 매번 내 눈을 통해 직접 볼 수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시골 공무원 월급으로 외식은 고사하고 매 끼니 상 차리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어머니와 할머니의 헌신 덕분에 재료 맛이 절반, 두 분의 고생스러운 노동의 맛이 절반이었던 우리의 식탁은 평범했으나 남루하지는 않았었다.




ㅋㅍㅇㅊ을 통해 주문한 피자가 도착했다. 두 아이들은 한국 도착한 지 열흘도 안되어 벌써 배달앱에 익숙해졌는지, 어떤 앱에 어떤 음식이 있고, 어떤 할인 혜택이 있는지 줄줄 꿰고 있다. 배달앱이 얼마나 편리한지, 인도에 있는 배달앱도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는 둥 열변을 토하고 있다. 아이들은 온통 ‘한국식 배달앱’이라는 신세계가 제공해준 편의성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불현듯 이 지극히 효율적인 배달앱의 뒤에서 보이지 않게 땀 흘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떠 올랐다. 음식의 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하고, 포장하고, 시간에 늦지 않게 '배달앱의 째깍째깍 거리는 독촉을 받으며' 아파트 계단을 숨가쁘게 뛰어오르고는 조용히 돌아가는 배달원들 말이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진짜로 고마워해야 할 대상은 배달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을 제공하는 이런 분들이다'라고 말하려다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문자 그대로 '코로나 지옥'을 탈출해서 1년 반 만에 '본국 휴가'를 즐기고 있는 아이들에게 꼰대 같은 설교 늘어놓느니, 잠깐 만이라도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도록 해줘야 할거 같아서였다.


재료 맛이 절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을 제공해주신 분들의 고생 맛이 절반이었던 오늘의 피자는 그래서 달콤하면서 쌉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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