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인생의 '화양연화'를 기다리는 아이들...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드디어 바깥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미 그 전날 오후에 구청 직원의 안내에 따라 보건소를 방문하여 코로나 검사를 받았으니 진정한 의미의 첫 외출은 아니었다.) 미리 예약한 에어비앤비 숙소로 짐을 옮긴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 주변도 산책할 겸 집을 나섰다. 때마침, 숙소 근처에 큰 대학교가 있어 교정을 천천히 거닐다 보니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자유인지를 새삼스레 절감하였다.
푸른 녹음을 배경으로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한 캠퍼스에는 많은 학생들이 분주히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아마도 기말고사 기간이 가까워진 때문인 듯했다. 삼삼오오 모여서 웃고 떠드는 학생들, 전동 스쿠터나 자전거를 타고 자유롭게 캠퍼스를 누비는 학생들... 활기차고 시끌벅적한 '대학생 언니와 오빠들'의 모습을 본 호비와 호지는 꽤나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큰딸 호비는 유난히 학교를 좋아했지만, 지난 1년 동안 학교에 간 날보다 가지 못한 날이 더 많았었다.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화면 속에 박제되어 있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유독 그리워했던 큰딸이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아, 빨리 대학에 가고 싶다'
'호비야. 조금만 기다려. 그럼 이 어려운 시기도 끝나고, 너도 곧 대학에 갈 거야.'
'아빠와 엄마한테는 인생의 황금기가 언제였어? 대학 다닐 때? 그때가 가장 좋았어? 나에게도 그때가 빨리 오면 좋겠다'
'응. 아빠한테는 그때가 최고의 시절이었던 거 같아. 전공 공부는 좀 힘들었지만, 학교 생활은 정말 좋았었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곧바로 취업을 해야만 해서 대학원을 못 간 게 좀 아쉬웠었지'
아쉬움과 후회가 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을까? 나 역시, 숫자를 지독히도 싫어하면서도 취직이 잘된다는 이유로 두 번 생각해보지도 않고 경영학과에 진학하고 나서 꽤나 긴 후회와 방황의 시간을 보냈었다. 전공과목은 최대한 적게, 교양 과목은 최대한 많이 들으며, 철학, 미술사, 심리학 수업을 성적표에 차곡차곡 적어갔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4년 동안 끝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나의 4년은 조금은 '헛헛한 황금기'였던 것 같다.
우리는 대부분 아는 만큼만 보고, 보이는 만큼만 이해한다.
넓은 캠퍼스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의 겉모습에 호비와 호지가 홀딱 반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직 대학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호비와 호지의 눈에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그저 동경 그 자체였을 테니까... 그들이 고도 성장기를 거친 나와 내 아내의 세대보다 훨씬 큰 고민을 하며, 취업을 위해 하루하루를 전쟁하듯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까지는 아마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젊은 세대의 취업난을 언론을 통해서만 접하다 보니 그들의 일상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그저 머리로만 이해할 뿐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인 법... 내가 과거에 겪었던 고난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고난이었고, 그걸 헤쳐 나온 나의 인생사야말로 글로 옮기면 책 열 권은 될 만큼 파란만장하다는 착각의 늪에 빠지게 된다. 나 같은 인생이 길가에 차이고 걸리는 돌멩이처럼 많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착각의 늪’ 한가운데에서 우리 세대들은 이미 이전에도 수십 번은 읊조린 '라떼' 타령을 다시 한번 자진모리 가락에 맞춰 불러제낀다.
'너희 세대만 힘든 거 아니야. 옛날에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라떼는 말이야...'
그날 저녁, 지나가버린 인생의 화양연화를 아련히 그리워하는 나와 내 아내는 인생의 화양연화를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호비와 호지를 데리고 천천히 산책을 했다. 지금 이 순간 화양연화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 채 바삐 일상을 보내고 있는 대학생들 사이를 오랫동안 걸으면서 말이다. 2주 만에 느끼는 자유는 달콤했고, 캠퍼스의 공기는 상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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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시설 격리 호텔 창밖으로 보이던 풍경을 글쓴이가 직접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