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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Jul 26. 2021

해외주재원?그 환상을 확실히 깨드립니다.

멋진 훈남(?), 도도한 차도녀(?) 아니면 그저 그런 한남충(?)...

해외 주재원이라는 단어를 듣는 독자들은 아마도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유창한 영어 아니면 현지어를 사용해서 계약 상대방을 휘어잡은 후, 경쟁사(이 경우 약속이나 한듯 일본 회사이다. ㅎㅎ)를 제치고 극적으로 거액의 계약을 따낸 다음 본사에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전무님, 제가 드디어 해냈습니다. 우리 회사는 이제 살았어요..’라고 외치는 멋진 산업 역군 이미지...(^_^)


만약에 선진국에 주재하는 직원이라면 한 손에는 아이패드를, 다른 한 손에는 스타벅스에서 방금 전에 4달러 95센트를 주고 산 '니트로 콜드 브루'를 간지 나게 들고 맨해튼의 마천루를 가로질러 당당하게 통유리 출입문을 통과한 후 ID 태그를 대자마자 소리도 없이 스르륵 열리는 턴스타일 게이트(turnstile gate)를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 차도녀의 이미지...(^_^)


만약에 후진국에 주재하는 직원이라면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조금은 나른하고 무더운 퇴근길에 잠시 집 근처에 위치한 야자수 무성한 카페에 들러서 갓 주문한 피냐콜라다를 마시며 한국에 두고 온 부모님(아니면 여자 친구?)을 아련하게 그리워하는 멋진 훈남의 이미지...(^_^)




그렇지 않다면, 해외 주재원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다. 해외에 주재하는 기간 내내 골프나 죽어라 치면서 월급은 국내에서 근무하는 거 대비해서 훨씬 많이 받는 프리 라이더(?).. 게다가, 운전기사와 가정부는 혹독하게 대우하면서, 한국 사람들하고만 어울려 한식당에만 몰려다니고, 그저 특례입학으로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한남충(?) 아저씨들...(*_*:)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지 수단 방법 안 가리고 해외법인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튼튼한 현지 바이어 한두 명 확실히 확보한 후, 적당한 때에 사표를 집어던지고 현지에 정착해서 시민권 따고 작은 사업체라도 차리려고 궁리 중인 ‘한국 싫어증’ 환자들(?)...(*_*:)




글쎄... 독자들이 위에 설명한 이미지를 떠올리셨다면, 일부는 맞고 대부분은 틀렸다. 적어도 내가 다니고 있는 지금의 이 회사(약 30여 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고, 전체 직원의 약 15% 이상이 해외에서 근무한다)를 포함하여 거의 대부분의 한국 회사에서 파견하는 해외 주재원 역할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


일단, 거의 대부분의 경우 해외 주재원은 생산 또는 영업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파견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주로 개발도상국에 생산법인을 많이 설립한 때문이다. 간혹 연구나 기술분야 담당자들이 파견되기도 하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연구나 기술분야 직원들이 파견되더라도 현지 생산라인에서 발생할 문제를 해결할 현장전문가들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영업 또는 생산 담당 해외 주재원들에게 주어진 과업은 아주 명확하다. 생산 스케줄에 따라 높은 수율로(즉, 불량품 없이) 제품을 차질 없이 생산해야 하고, 이를 많이 팔아야 한다. 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거의 대부분의 경우 숫자로 정해진 업무 목표를 달성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해외 주재원의 성과평가, 더 나아가 승진 여부가 칼같이 결정된다. 그만큼 업무 목표 달성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한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도 그만한 업무 부담 느끼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이면 선진국대로, 후진국이면 후진국대로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는 해외에서 스케줄에 맞춰 업무 목표를 달성한다는 게 한국에서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대기업 생산법인의 경우 현지에서의 관리 업무, 예를 들어 인사나 재경 관리를 위한 직원도 소수이지만 파견된다. 현지 직원 인사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이면 말 안 듣는 현지 직원들과 하루에도 몇 번씩 티격태격 싸우며 부대껴야 한다. 황당한 현지의 노동 관련 법률을 근거삼아 소송이나 당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몇몇 나라에서는 긴 휴가가 끝날 때마다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현지 생산직원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생산직 직원을 일 년에도 몇 번씩 뽑아야 되는 코미디 같은 상황도 반복된다.


자재구매 또는 재경 담당 직원이라면 이번 코로나 시기에 아마 혼이 쏙 빠졌을 것이다. 세관을 포함해서 통관 관련 각종 정부기관과 민간 회사들이 일제히 근무를 안 하거나 재택근무로 돌아서면서 배를 타고 들어오는 부품과 자재 수입품들, 항만 창고에 가득 쌓여 하루하루 지날수록 변질되는 원자재들을 속절없이 바라봐야만 했을 테니, 아마도 속이 새까맣게 탔을 것이다.


각종 통관서류가 도착해야 은행 업무를 볼 텐데, 서류들은 도착 안 하지, 어제까지 분명히 통화했던 현지의 거래 은행 직원은 갑자기 통화 안돼서 겨우겨우 휴대폰으로 전화 걸었더니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2주간 격리를 시작한단다. 법인장도 이 상황을 모를리가 없을텐데 1시간이 멀다 하고 부하 직원만 닦달한다. 이쯤 되면, 정말 중간에 끼어서 속된 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람과 보상이 큰 것은 물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0년이나 20년 전보다는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한국보다는 확실하게 높은 급여는 좋은 유인이다. 여기에 주택을 포함해서 국제학교에 진학하는 자녀들의 학자금까지 지원해주는 복지혜택에, (후진국인 경우) 잊을만하면 분기에 한번 정도 본사에서 보내주는 한국 부식들과 간식들... 그리고, 1년에 한 번 정도 가족 전체에게 비행기표까지 사주면서 한국으로 휴가를 보내주는 본사의 따뜻한 배려에 사실 감동받기도 한다.


30평짜리 전세 아파트에서 내년에 올려줄 전세금을 고민하며 살던 아빠와 엄마가, 일주일에 학원 다섯 군데를 뺑뺑이 돌며 초주검이 되곤 했던 3, 1짜리 애들을 데리고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공항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드라이버 아저씨가 아빠를 보자마자 "Good afternoon, sir" 외치고는 차를 기가 막히게 운전해서 60평이 훌쩍 넘는 고급주택 앞에 가족들을 내려 준다면... 가족들 모두 눈이 휘둥그레 해질 수밖에 없다...(ㅎㅎ)


그런데, 이 놀라움과 경탄은 딱 한 달 정도 유지된다...


아버지가 회사에 출근해서 본격적으로 업무 실적 압박을 받기 시작하면서, 학교 수업을 하나도 못 알아들어서 새파랗게 질린 아이들이 quiz 시험에서 줄줄이 C와 D를 받아오면서, 어머니의 경우 가정부가 집안의 물건을 슬쩍슬쩍 훔쳐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채면서 해외 주재원에 대한 환상은 산산이 부서진다. 가족들은 이제 깨닫는다...


'아.. 똥 밟았다...'




결국 이곳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그리고 교활한 사람과 순진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람 사는 곳’중 하나라는 것, 그저 우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우리와는 다른 문제를 갖고 있으며, 우리와는 다른 방법으로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생활의 터전’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회사를 기사회생시킬 드라마틱한 계약건이 매일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손에는 ID 카드를 다른  손에는 ‘니트로 콜드 브루 들고 매일 같이 길거리를 싸돌아 다닐 일도 없고, 야자수 밑에서 피냐콜라다를 마실 여유도 없는 ... 한국과 똑같이 바쁘고 정신없는, 그저 한국에서의 직장생활과 다를  없는, 장소만 달라진 직장생활의 연속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때 비로소 진정한 해외 주재원의 생활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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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umbnail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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