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몬순을 뚫고 출근하기

계속 가야할지 집으로 돌아가야할지 망설여지는 출근길…

빗줄기가 베란다를 때리는 소리에 새벽잠이 깼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출근길이 만만치 않겠구나'라는 짜증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침대에 누운 채로 잠깐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지금 이곳 뉴델리는 몬순 기간을 지나가고 있다. 뉴델리가 있는 인도 북부의 경우 7월 초에 몬순이 시작되어 약 2,3주간 지속된다. 인도의 몬순은 세차게 비가 쏟아지다가 멈추다를 반복하는 우리나라의 장마와 비슷하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게 있다. 바로 비가 내린 다음이다.


이곳 뉴델리에서는 10분만 비가 내려도 도로 곳곳이 빠르게 침수된다. 집 앞의 이면도로를 오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순식간에 수상스키로 변신하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만 한데, 멀쩡한 4차선 도로도 순식간에 무릎 높이로 침수되어 승용차는 물론이고 버스마저 거북이 걸음을 해야 한다.


작년 여름, 인도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겪는 몬순 기간... 아침 아홉 시가 넘어도 사무실에 도착하지 못한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도로가 침수되어서 차들이 꽉 막혀 있어요. 오도 가도 못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길래 '도대체 얼마나 침수가 심하길래 저러나?'라고 의아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직원이 작년에 겪었던 일과 비슷한 일을 오늘 내가 출근길에 겪었다.




집을 나와 4차선 도로에 들어섰는데, 그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미 가장 외곽의 2개 차선에 흙탕물이 가득 찼고, 그나마 수심이 낮은 중앙 쪽 2개 차선에만 차가 다니고 있었다. 중앙 쪽 2개 차선도 이미 바퀴의 절반은 족히 잠길 정도로 물이 들어차 있었다.


집 근처를 벗어나기 직전에 찍은 사진. 이 때만 해도 사무실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가늠하지 못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길이 되리라 생각했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건 금방 깨닫게 되었다. 집 근처를 벗어난 차가 몇 분을 더 달려 조금 더 낮은 저지대에 진입하자 침수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머리 속도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근무하는 주재원들의 제1 행동원칙은 무조건 '안전'이다. 모든 것은 그 다음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내 등 뒤로 '오늘 출근 가능할 거 같애?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곧바로 차 돌려서 집으로 돌아 와'라고 걱정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기 시작한다.


'아... 이대로 출근을 강행하는 게 과연 안전한 행동인가?'


드디어 내가 탄 차가 사무실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낮은 저지대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창 밖을 보아하니 수심은 이미 차량 바퀴쯤은 훌쩍 넘어버린 듯하다. 차를 돌려 집으로 가야 할지 이대로 사무실로 가도 되는 건지 머릿속은 복잡해지기만 한다. 차창 밖 인도 위로는 시민들이 멀쩡히 잘만 걸어 다니는데, 차도 위의 차들만 모두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니, 이 상황이 우습고도 무서울 뿐이다.

창 밖으로 보이는 옆 차량이 물에 완전히 빠졌다. 차의 윤곽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인데 멀리 인도 위에는 사람들이 별 불편 없이 잘만 걸어가고 있다.




다행히, 사무실까지 가는 길 중에서 가장 낮은 저지대를 무사히 지났다. 오른손 손가락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너무 긴장해서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꽉 쥐고 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이제 가장 어려운 난코스는 지났고, 몇 킬로미터만 더 가면 사무실이다. 나 자신도 모르게 생명도 없는 기계 덩어리 차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힘내라...(*_*)'.


가장 외곽 차선 쪽을 봤더니, 파도가 넘실넘실 거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수심이 깊어 보였다.


외곽 차선 2개가 완전히 침수되었는지, 차가 지나가자 파도가 넘실넘실 일어난다. 이미 이런 침수에 익숙하기라도 한 듯 다른 차량들은 일제히 중앙선 쪽 2개 차선에 바짝 붙어서 잘도 전진하고 있다. 버스에, 트럭에, 승용차에 오토바이까지 생업의 터전으로 향하는 분주한 아침 출근길은 혼잡하기만 했다.

사무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저기 보이는 오버브릿지만 넘으면 이제는 사무실이 있는 Aerocity이다.




사무실로 가는 길은 마지막까지 순탄하지 않았다. 사무실 바로 앞에 있는 도로의 일부 구간이 침수되면서 약 1km를 돌아서야 겨우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운전기사가 번호판을 손으로 툭툭 치더니 이내 다시 꾹꾹 누르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몇십 분을 물살을 헤치고 오느라 수압 때문에 번호판이 헐거워지고 이물질이 끼어서 그걸 털어내고 다시 번호판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거란다.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아침 출근길에 자동차의 본분을 잊고 잠시 모터보트 노릇을 했던 차가 이제 다시 자기 본분인 자동차의 신분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와 여느 때처럼 공기청정기를 켰고, 10여분이 지나서야 청정기의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마스크를 벗고 컴퓨터를 켜니 본사에서 날아온 업무지시를 포함해서 안 읽은 이메일이 수북이 쌓여 있다. 이쯤 되면 제목도 안 읽고 삭제해도 되는 스팸메일이 반가울 지경이다. 이제 또 하루가 시작이다. 바깥세상은 침수가 되고 물난리가 나더라도 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은 해야만 한다. 그게 우리의 고달프고 신산한 삶이다.


나와 오늘의 험난한 출근길을 동행했던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출근 동지들도 이제 지금쯤이면 각자의 일터에 도착했으리라... 사무실 동료들과, 작업장의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인도식 차를 따뜻하게 마시며 험난했던 출근 무용담을 나눌 것이다.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어제와 같은 듯 다른 오늘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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