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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도 Jul 14. 2023

0. 미국 MBA 도전기

난 지금 확실히 "이게 뭥미 구역"에 있다.

난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다. 졸업한 지 10년이 된 지금은 자랑스러운 나의 모교이지만, 사회 초년생일 땐 좋은 대학을 졸업한 분들이 그렇게 멋져 보였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난 학창 시절 썩 우등생은 아니었던 터라, 1년 재수 끝에 (사실 눈치 보며 방에 틀어박혀 미드나 실컷 보던 안식년에 가까웠다.) 인서울 끄트머리 그 어딘가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했다. 전공도 내 점수에 맞는 대학을 대강 추린 후, 엄마가 정해주셨다. 그렇게 딱히 장래희망도 없던 질풍노도의 어린 어른이었다.


대학교 4년도 그저 그렇게 지나간 것 같다. 집에서 학교까지 지하철로 왕복 3시간이었던 터라, 수강신청 광클로 매 학기 수업을 최대한 몰아서 학교에는 2~3일만 가고 나머지 날은 집에서 역시 미드. 그래도 한 번은 성적장학금도 타고, 대강 성실한 축에는 속했던 것 같다.


반전으로 회사 생활은 정말 열심히 했다. 사실 나에겐 거의 덕업일치의 삶이었다. 담당 직무는 나에게 너무 잘 맞았고, 재미있었고, 행복했다. 버릇처럼 했던 말은 "죽기 하루 전까지 일하고 싶어!"

덕분에 많은 인정도 받았고, 운도 따라주어 만 29살 어린 나이에 과장 승진까지 해냈다.


그렇게 정든 회사를 떠나, 아마존에 입사해 어찌어찌 정신 차려보니 PM(product manager)이 되어 있다. 실무보다 프로젝트 업무가 많은 팀 특성상, 입사하자마자 70% 이상의 시간은 프로젝트에 치중했었고, 이 전 직장에서 배워둔 소프트웨어 기술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관련 프로젝트를 직접 이끌게 되었다. 그리고 또 세상에서 가장 천재적인 멋진 사람들과 협업하며, 크고 작은 다른 프로젝트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우리에겐 Comfort zone(편안한 구역), Learning zone(배우는 구역), Growth zone (=What the f*** zone, 즉 이게 뭥미?! 구역)이 있다고 한다. 난 지금 확실히 이게 뭥미 구역에 있다. 내 전공 분야도 아닌 데다가, 경험도 적은 곳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니 말이다. 스트레스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고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질 때도 많다. 게다가 모든 업무는 영어. 우리 조직의 유일한 한국인이자, 유일하게 한국에 위치한 사람으로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배우는 게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4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마치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느낌?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배우고 있다. 최악의 경우, '난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것이라도 배운다.


처음엔 내가 무언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질문도 소극적으로 하곤 했는데, 이제는 많이 뻔뻔해져서 사이언스 팀의 전문용어들과 메커니즘을 도저히 못 알아듣겠으면 "저기, 영어로 좀 말해주실래요? (Umm, English please?)"라고 농담처럼 묻곤 한다. 사실, 이상한 건 아니다. 이곳은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일하고 있기에, 서로의 전문분야를 모르는 게 당연하고 질문을 하더라도 절대 손가락질받지 않는다. 오히려 입을 꾹 닫고 가만히 앉아있는 게 더 이상할 정도!


그렇게 4년 차 PM으로서의 삶, 총경력은 10년이 넘었다. 사춘기가 올 때도 되었지.

Source: PositivePsychology.com Toolkit – ‘Leaving The Comfort Zone’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의 학력 콤플렉스에 더불어 막연히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엔 국내 대학원에 지원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직장과 병행 불가. 그리고 내 전공을 더 깊게 파는 것도 좋겠지만, 되도록 PM으로서의 길을 넓히고 싶었다. (PM으로 사는 삶의 장점에 대해선 다음에 더 이야기해 보겠다. 내 삶을 한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마일스톤을 세워나갈 때의 짜릿함! 즐거움!)


그렇다면 무슨 공부를 해야 할까? MBA? 그렇지만 그건 대단한 사람들만 하는 거 아닌가? 난 인서울 대학도 겨우 들어갔는 걸... 하지만 어느새 검색에 검색을 거듭. 내가 필터 한 항목은 다음과 같다.


(1) 해외 대학일 것. 최대한 미래의 길을 넓히기 위해, 해외에 있는 대학에서 영어로 공부를 하면 좋겠다.

(2) 따라서 온라인 학습이 가능할 것.

(3) 직장과 병행 가능할 것. 학비 걱정 따윈 없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계속 벌어야만 한다.

(4) 학비가 지나치게 비싸지 않을 것. 솔직히 말해서, 이 학위는 나에게 '필수요건' '무조건' '없으면 큰일 나'와 같은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나의 계발을 위해서이기에, 억대의 학비를 지불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추리고 추려서, Illinois University에 지원하게 되었다. 맞다, 기생충의 박소담 씨가 노래로 만들어 부르던 그 일리노이. 학교는 정했지만 지원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걱정과 생각이 거듭되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영어로 일을 하고 있다지만, 공부를 영어로? 너무 힘들지 않을까? 과제는? 팀플은? 학우들과 시차는 어떻게 극복하지? 성적이 좋지 않으면?


그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짝꿍의 조언 한 마디는, "그냥 한 번 해봐!"였다.


사실 맞다. 이게 의무 교육도 아니고, 까짓 거 영 아니다 싶으면 한 학기 다니고 때려치우면 되는 거다. 성적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내가 원하던 공부가 아닐 수도 있고 또 다른 길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그래! 해보자. 그리고 지원해도 붙을 거란 보장도 없잖아? 일단 입학 신청 에세이라도 써보자.


그렇게 나의 MBA 대장정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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