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밸런스는 필요조건 인가요?
화이트 밸런스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편해지는가'에 대한 보충(?)입니다.
여기서는 [사진술의 허들이 높던 시절]을 대략 30년 전, 1990년대 중반으로 가정해봅니다. 허들이 높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풀어써 보자면, 요즘과는 다르게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가 여러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행위의 목적성이 특정지워지지 않는 경우 무모(?)하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일이 없던 때-라고 해 두면 될 것 같군요.
1990년대에 필름을 사용하여 위의 MICA Studio 사진을 만들 때 "실내는 하얗게 칠한 페인트 색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고 창 밖의 풍경은 그대로 살려야 한다!" 라면, 몇 가지 기술적 선택을 해야 한다.
쉬운 방법을 택하기 좋아하는 나라면, 실내에 5000k 조명을 뿌릴 방법을 연구했을 것이다. 조명은 저 멀리 원경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니 원경에 대한 걱정은 크지 않을 것이다. 유리창에서 일어날 반사만 조심하면 될 것이다. 오른쪽 방에 뿌리는 조명에도 큰 걱정거리는 없다. 다만 숙제는 정면에 보이는 기둥과 왼쪽 벽면에 뿌릴 조명이 된다. 왜냐하면, 왼쪽 방 안은 어두운 상태 그대로 두고 싶기 때문에, 저 공간에 빛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세심한 조정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들이 너무 복잡하다고 여기면, 후작업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실내의 조명 색을 맞추기 위해 텅스텐 필름을 사용하거나 색필터를 사용한 사진을 찍고, 일반적인 주광 필름을 이용한 사진을 찍은 후 그 필름들을 스캔하고 합성하는 방법을 생각했을 것이며, 혹시 누군가는 이런 방법들보다 훨씬 창의적으로 필름의 색재현성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머리를 짜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여러 가지 화이트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방법들을 찾다 보면 "왜 화이트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가?" 하는 아주 자연스럽고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가까운 답은 앞에 쓴 것처럼 "실내는 하얗게 칠한 페인트 색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고 창 밖의 풍경은 그대로 살려야 한다!"라는 목적에 있겠죠.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어째서 실내는 하얗게 칠한 페인트 색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고 창 밖의 풍경은 그대로 살려야 하는 거죠? 어째서 그것이 목적이 되는 건가요?
당연히 저 "실내는 하얗게 칠한 페인트 색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고 창 밖의 풍경은 그대로 살려야 한다!"가 사진을 찍는 사람의 확고한 목표라고 한다면 그것에 특별한 이의를 제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 목적에 근접하려고 노력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으로는 앞에 서술된 것처럼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그 방법들을 선택하고 수고를 들이는 것은 작가의 몫입니다.
하지만 약간 골치 아픈 함정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작가가) 만드는 사진 이미지는 절대적으로 완벽한 화이트 밸런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너무나 확고하게 고정된 사고라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필름 시대에 화이트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들여야 하는 수고에 대해 장황하게 써 놓은 이유는, 필름을 쓰던 시절에는 화이트 밸런스를 맞추는 것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비용을 지불해야 했음을 어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필름은 햇빛(주광) 아래에서 촬영될 것을 전제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니다. 따라서 그 시절, 화이트 밸런스를 맞춘다는 것은 그 목적이 확실하지 않으면 그 시도를 한다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으며 그것은 이렇게 풀어쓸 수 있게 됩니다.
[맞춘다는 생각조차 못 해본 것] 혹은 [맞추고 싶은데 너무 힘들어서 그냥 포기했던 것]
그런데(혹은 그렇기 때문에) 필름에서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는 시절로 넘어오며 우리는 쉽게 화이트 밸런스를 바꿀 수 있는 선택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필름을 쓰던 시절에 너무나도 힘들게 처리해야 했던 일 중 하나를 너무나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고, 바로 이 부분 때문에 화이트 밸런스를 쉽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화이트 밸런스를 꼭 맞추어야 한다는 함정(?)에 빠진 게 아닐까?라고 저는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두 사진 중 위의 사진이 작가인 제가 세상에 보이고 싶은 공간과 평면에 대한 감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창 바깥의 세계와 그 안쪽 건물 안의 세계는 완전히 유리되어 있고, 그것을 지켜보는 저 자신 또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것을 느끼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 이미지를 보는 관객들 또한 이 유리된 거리 감각을 느끼길 바랍니다. 그렇다는 느낌을 효과적으로 주기 위해, 저로서는 저 노랗다 못해 누렇게 침체된 색을 선택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을 보여주게 됩니다.
아래, 화이트 밸런스를 간략하게 보정한 사진은, 저로서는 너무 깔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래의 방식이 아닌 위의 이미지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화이트 밸런스를 지켜(?)야 한다는 사고나 감각은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아니, 좀 더 명확하게 얘기하자면, 실제의 내가 느끼는 창 바깥의 세상, 창 안 어느 건물의 칸막이가 있는 세상, 그리고 카메라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나'가 느끼는 유리감을 표현하는 데 있어 실제의 내가 보고 있는 상태보다 카메라의 한계(화이트 밸런스를 맞추기 힘든)에 의해 만들어진 이 이미지가 훨씬 강렬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때문에 아 원래 이게 흰 벽인데 이걸 맞춰야 하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아니! 아래 것이 훨씬 더 와 닿는걸요!?"
라고, 많은 분들이 말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구요?
어떻게 되긴요. 골치아픈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