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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do Lee Jul 18. 2019

우리 집에 와 보겠어요?

INDEXCAPE 이야기


2013, Series INDEXCAPE | HODO LEE


이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저 멀리 농장에서 차 한 대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차가 내 앞에 멈춰 서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총을 든 사람일지 아닐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저 차를 몰고 나오는 사람은 어떠한 형태로든 나에게 말을 걸 것이라고.





저 멀리 보이는 것은 미국 델라웨어주에 있는 세일럼 원자력 발전소 [Salem Nuclear Power Plant]다. 2012년 겨울, 나는 INDEXCAPE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미국의 동부 해안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델라웨어의 1번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희미하게 나타난 저 발전소의 모습을 보고 근처 동네로 빠져나와 이곳저곳에 멈춰서 촬영을 하게 되었다.


가장 적절한 (완성된 바로 저 이미지를 위해) 촬영 장소를 찾기 위해 한 번에 몇 마일씩 이동하던 중 문득 나는 내가 굉장한 미국 시골 외곽에 접어들었음을 깨달았다. 시골 중의 시골, 시골의 와일드한 삶이 그대로 적용되는 그런 시골.


저 멀리 보이는 집에서,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차 한 대가 출발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시골에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사실 아주 묘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외딴 시골에 뜨문뜨문 한 채씩 있는 저런 집에는 여러 가지 미국식 정서가 혼합되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중 "Protecting Private Property"라는 자기 자신의 영역을 지킨다는 개념은 때때로 이방인에게 아주 공격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모르면 속이 편할 것을.


나 스스로 나를 돌아봐도, 확실히 나는 이 시골에서 이질적인 존재였다. 온통(?) 백인들 뿐인 이런 시골에, 아웃도어 밴을 끌고 나타나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동양인은 흔치 않은 것이다.


때문에 저 멀리 저택에서 차 한 대가 출발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직감이 발동했고 그것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그 차는 내 앞에 슬그머니 다가와 멈춰 섰다. 나는 내 목에 걸려있는 학생증에 감사했다. 이거라면 별 일 없겠지. 설명할 수 있겠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하지만 잔뜩 긴장한 내게 말을 건 것은 나이 지긋한 할머니였다. 파란 승용차의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고, 샷건을 들지 않은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을 때, 나는 확실히 조금 안도했다.


"뭘 찍고 계시오? 여긴 뭐 아무것도 없구먼?"


"저기 보이는 저 핵 발전소 굴뚝을 찍고 있어요. 여기가 아주 뷰가 좋아서요."


"여기? 여기가 뷰가 좋다고? 우리 집 안에서 보면 훨씬 가깝다오. 어디 우리 집에 가서 찍어 보겠소? 우리 집은 여기서 농장을 하고 있지. 수확이 다 끝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 와서 보면 저 굴뚝이 훨씬 가깝게 보이거든? 어디 와서 찍어 보겠소?"


너무나 거침없는 초대에 나는 확실히 좀 놀랐다. 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헤실헤실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아마 지금 이 상황에 긴박한 긴장감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좋았나 보다.


"정말 정말 괜찮아요. 여기서 저 굴뚝을 조그맣게 찍는 게 목적 이거든요."


"응? 그렇다고? 허허 거참. 그래 그렇다면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 번 와 보도록 하구려."


할머니는 그것 참 알 수 없다는 느낌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차를 몰아 다른 한 편으로 조용히 떠났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 쉬었던 것 같다. 여러 의미의 한숨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저 멀리서 뭔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나와 봤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어디로 가기 위해 나오다가 나를 발견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차가 내 앞에 멈추리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 아무것도 아닌 대화, 아무것도 아닌 추측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스쳐 지나가는 대화 이후에, 나는 어떤 종류의 평안함과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INDEXCAPE의 한 장을 찍을 수 있었다.


언젠가, 다시 저곳에 방문할 일이 내 생에 찾아올까? 그것은 잘 모르겠다.


지번과 농장의 이름만 기록했다. 내가 저곳에 다시 가게 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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