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작가를 하나로 묶는데 10년쯤 걸렸지 뭐예요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몸이 고생한다고, 오래전에 봤던 유화와 그다음으로 시간차를 두고 본 한 일본 작가의 사진이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형태로 합쳐지는데 대충 15년이 걸렸다.
위 기사를 들어가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두 작업 중 원형이 되는 것은 프랑스인 Balthus (본명 Balthasar Klossowski)의 그림이다. 일본인 작가 Hisaji Hara는 Balthus의 작품에 대한 헌정이라 하겠다.
나는 2004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발튀스의 그림을 처음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을 받아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듯, 그의 그림은 사춘기에 인접한 소녀들을 에로틱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혹은 악명)하다. 하지만 발튀스 자신은 자신의 그림이 에로틱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 스스로 그의 그림에 대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내 나름대로 그의 그림에 대한 그 강렬한 느낌을 얘기하자면 그 핵심은 에로틱함 자체가 아니라 '뭔지 모르지만 있어서는 안 될, 하지만 없지도 않을 불편함'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문에 이것은 Taboo라는 단어 한 마디로 설명이 될지도 모른다. 금기.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하지만 그것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인 이유는, 그 일이 분명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혹은 우리가 그것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스스로 그 일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그림이 전하는 느낌이 이 그림은 존재해도 과연 괜찮은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큰 숙제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 그림을 보며 (무엇이 되었든 간에) 어떠한 감정을 느끼는 감상자 스스로 자신이 터부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고 느끼게 되는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의 그림들이 아주 직접적인 포르노의 역할을 대신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적어도 평론가들은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의 그림이 갖는 모종의 초(비) 현실적 힘 때문이다. 그의 그림이 어째서 초현실 적인지, 어떤 묘사의 어떤 부분이 왜 그의 그림을 초현실적으로 만드는지 (혹은 초현실주의 작품이라 칭하는지)에 대한 제도론적 얘기는 공부가 짧은 나로서는 이렇다! 하고 주장하기 힘들기는 하다. 다만 수년간 작품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내려야 하는지 그대로 두는 것이 맞는지를 놓고 끝없이 토의가 이루어져 있지만 여전히 그림이 걸려있다는 것으로서, 그 '제도론'적 협의(?) 내에서 이 작가와 작품이 아직도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할 뿐이다.
어쩌면 그것은 발튀스의 생애나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나는 발튀스가 아직 어렸던 시절, 그의 어머니가 이혼 후 시인 릴케와 연인이 되었다고 알고 있다. 여기서 굳이 그의 어린 시절의 그런 경험들이 그의 그림에 나타나느니 하는 얘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의 기라성 같은 친구(?)들이 그가 위대한 화가라는 보증을 세운다는 말 또한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외국의 매체에서도 아주 중요한 방어수단으로 사용된다. 그의 그림에 대한 소개를 알베르 까뮈가 해 주었다는 것이, 가디언지 기사의 첫 문장이다) 나는 그저 그의 그림은 자체로서 여러 덧붙일 말이 필요 없는 어떤 힘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까놓고 말하자면 이건 너무 19-20세기를 쥐고 흔든 백인 남성들의 예술판 에서나 통용될게 아닌가!? 하는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커버레터를 알베르 까뮈가 썼다면 그것이 과연 아무런 힘도 뒷받침하지 않는다 할 수 있을까?
발튀스의 사진을 본 것으로부터 10년 후인 2014년, 뉴욕 댄지거(Danziger) 갤러리에 들렀을 때, 히사지 하라의 사진을 보고 또한 강렬한 무엇을 느꼈다. 그런데 이때 히사지 하라와 발터스의 관계를 알아채진 못했다. 머릿속 저 어딘가 너머 너머에서 아주 희미하게 이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이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아래의 그림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 두 작가의 작품들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내가 사실상 발튀스의 그림을 처음 본 당시 사진을 찍어 두었음에도 그 작가의 이름이나 역사를 전혀 알아보지 않았으며, 댄지거 갤러리에서 보게 된 히사지 하라의 사진에는 흥미를 느끼면서 조차 스테잇먼트를 들여다보지 않은, 불성실한 관객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너무나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엊그제, 한 친구와 이런저런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것이 흘러 흘러 발터스에 이르게 되었다. 나로서는 타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조엘 피터 위트킨에서 시작해 발튀스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때마침 그와 비슷한 사진 스타일인 히사지 하라도 생각나 그 둘을 동시에 이야기하며 검색하게 된 것이다.
아니 그랬더니 이게 뭐람.
애초에 히사지 하라가 발튀스 헌정작(?)으로 그 사진 작업을 했었던 거였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발튀스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으므로, 그보다 더 명확하게 기억나는 New York Times의 기사를 찾는 방식으로 발터스를 역추적해 들어갔다. 왜냐하면 발튀스의 그림은 늘 논란의 중심에 있어 그것을 메트로폴리탄의 벽에서 내리라는 요구에 자주 휩싸이는 편이고, 어느 날 그에 대한 기사가 뉴욕 타임즈에 대문짝(?)만 하게 난 것이 나에게는 이름보다 훨씬 편한 '정보의 위치'로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controversial girl painting metropolitan으로 구글링 하면 금세 기사가 찾아집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히사지 하라는 new york best photography gallery -> danziger gallery -> exhibit history라는 순서로 찾았다.
자, 그렇게 이 두 사람의 관계(?)가 하나로 합쳐지는데 나에겐 15년의 시간이 걸렸고, 그렇게 15년이 걸린 후에 이렇게 긴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이유는, 이 작업들이 갖는 머리가 띵 하게 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라고 한다면, 그건 역시 얘기가 길어질 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