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캐년에서 있었던 일
2009년 6월의 일이다. 그때 나는 며칠간 그랜드캐년 북부에서 캠핑을 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사진들을 찍은 곳은 발할라 오버룩 [Walhalla Overlook]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한 외국인과 영국 문학에 대한 잡담을 꽤 길게 나누게 되었다.
해가 떨어지면 저 멀리 그랜드캐년의 남쪽 부분 [south rim] 건물들의 작은 불빛들이 신기루 마냥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눈을 감았다 뜨면 갈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비좁은 장소에서 일몰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다 보면, 자연스레 먼저 찍으라며 순서를 양보하거나 상대방 프레임을 가리지 않게 피해 주거나 하며 말을 섞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는 위 사진의 노신사와 짧은 대화 -small talking-을 시작하게 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꽤 열을 올리며 "나는 영국 문학이 저변에 깔린 그 비틀린 감성이 싫다."라고 강변하고 있었다.
2009년 즈음 내가 껄끄럽게 본 영국 작품들은 닥터 후, 해리포터 시리즈 그리고 반지의 제왕 정도가 있었다. 나는 그 시기에 본 이 작품들에서 껄끄러운 감정들을 자주 느꼈다. 그 형태를 짧게 축약해서 말해 보자면 이렇다. 대체로 주인공들이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거나 오해를 받고, 그 주변 인물들의 비중이 적으면 적을수록 주인공에게 매우 배타적이며 공격적인 성향을 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극적 전개는 너무 과하다 싶게 작위적이어서 독자인 나로 하여금 '이렇게 푹푹 썩히지 않으면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하는 건가?'라는 갑갑함을 느끼게 했다. 물론 그것을 그들의 풍자 코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나만의 경험에 의한 것이지 영문학 전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위에 말처럼 , 주인공들이 그들의 자아를 보다 많은 사람들(공리)를 위해 희생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의심을 받는 희비극적 상황이 너무 작위적으로 극 중 내내 묘사된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나로선 좀 피곤한 것이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나는 어린 시절 [소공녀 : A little princess]를 각색된 만화로 보았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이 작품은 내게 거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 친구가 안 나타나면 그냥 저렇게 박해받으며 평생 살아야 하는 거잖아!'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사건이 정리되고 나면 그냥저냥 모두가 대체로 어영부영 해피엔딩이 되긴 하지만,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겪어본 영문학의 정수는 모두 그런 비틀린 고난 묘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런 얘기를, 나는 그랜드 캐년에서 어쩌다 스쳐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서툰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열까지 올려가며.
아니 대체 왜 그랬던 걸까?
이런 장소에선 나도 그도 모두 이방인 일 뿐이며 이런 대화야말로 이방인들 끼리의 스몰톡 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