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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do Lee Nov 27. 2019

On the road

길 위의 황홀한 불안


series | o r p h e u s | 2017 | HODO LEE


나는 미국이란 나라의 길 위에 있길 원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가 미국이란 나라를 아무런 맥락도 없이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다. 영국의 식민지로 시작된 미국의 역사도, 그 시초라 할 수 있는 영연방제국주의 역사에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을 몰아냈던 역사와, 노예제 후유증인 인종차별이 광범위하게 남아있음은 내가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환멸과 두려움을 갖게 한다. 게다가 20세기 이후 펼쳐지는 끝없는 그들의 자기애적 광증에는 사실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미국이란 나라의 길 위에 있을 때 가장 밀도 높은 삶의 의미-혹은 그 비슷한 무엇-을 느끼며 때문에 계속해서 그 감각과 닿아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on the road | HODO LEE


on the road | HODO LEE


그건 아마도 내가 그곳에서 가장 뼈저리게 이방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미국의 길'은 인간의 발길이 닿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곳까지 넓고 촘촘하게 펼쳐져 있으며 그 사실은 나에게(혹은 사람들에게)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한다. 물론 거의 모든 현대국가들은 대체로 장 정비된 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땅이 갖는 물리적 광범위함은 도시와 도시 혹은 도시와 불모지를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무덤덤하게 연결하고 있으며 바로 그런 점에서 내가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마치 공중에 붕 뜬 상태로 둥실 유리되어 있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on the road | HODO LEE


그렇게, 그 길 위에 있으면 어느 순간 내가 문화나 인종, 언어 등 모든 분야에서 철저히 이방인이라는 감각이 더해진다. 그런 물리적 정신적 감각들이 모두 뒤섞이는 순간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못하며) 동시에 어디에든 속하기 위해(혹은 받아들여지기 위해) 끝없이 이동하고 있다는 초조함과 희망을 느낀다. 나는 내가 중독된 이 생생한 감각을 황홀한 불안이라 말한다


series | o r p h e u s | 2017 | HOD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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