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0000 Gadgetz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do Lee Aug 23. 2019

일본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

어쩌다 보니 그 도구를 사용할 뿐이다

2019년 8월 22일.


지난 7월,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목록에서 제한 후,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하는 경제 도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례한 처사들을 일삼았다. 그런 와중에 바로 며칠 전 일본의 외상이 국내 기자들에게 "너희들 결국 일본 카메라 쓰지 않냐?"라고 물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일본의 외무상이다. 그 덕분에 그 나라의 격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이 질문에서 그가 얻고자 했던 것은 너희가 일본 없이 뭘 할 수 있겠느냐?라는 우월함 외엔 없다. 결국 일본이 만든 도구를 쓸 수밖에 없지 않냐? 고.


그렇다면 저런 저열한 수준의 도발에 대해, 일본산 카메라를 쓰는 어떤 개인이(나 혹은 누군가) 그 사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우리는 아주 극소수의 사이드킥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전혀 없는 것이 이 산업 영역임을 이해하고, 바로 그 점이 일본산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더러운 기분을 느끼게 하는 핵심이 된다는 것 까지만 숙지하면 된다.


카메라 산업은 백여년 이상 이어져온 근현대 산업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그 산업의 주도권을 일본이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우리 한국이(혹은 다른 나라들이) 해당분야에 대해 영향력이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해 패배의식이나 피해의식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다. 애플이 삼성의 반도체를 사용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듯, 현대 산업구조는 그런 복잡한 관계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는 저 일본이란 나라의 외무상이 내뱉은 비아냥의 무게가 한없이 가볍고 애처로운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간혹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면 그 영역에서 일본의 손이 덜 간 사이드킥들을 사용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당당(?) 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이것 또한 무책임한 말이다,  말한 것 처럼, 이런 태도는 현대 산업체계의 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비록 2013년 자료이긴 하나, 카메라라는 산업의 편중성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2013년 자료이긴 하지만 위 그래프를 보면 세계의 디지털카메라의 마켓셰어는 일본산 85퍼센트, 그 외가 15퍼센트 라는것을 알 수 있다. 미러리스 카메라로 범위를 좁히면 전체 산업의 98.6퍼센트를 일본산이 차지하게 된다.


이로서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일본산 카메라란 일본 자동차와 달리 그것이 없으면 다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 자체가 거의 없는 일본의 독점적 산업 영역이란 것이다. 현실에선 도요타가 싫다면 현대나 벤츠를 탈 수 있다. 푸조나 폭스바겐도 있고 피아트도 있다. 하지만 만약 도요타 외의 선택이 부가티나 페라리 밖에 없다고 생각해 보면 저 카메라 영역에서의 문제를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캐논, 니콘, 올림푸스, 소니 등등의 일본 카메라를 제외하고 찾아볼 수 있는 카메라 메이커는 독일의 라이카와 스웨덴(중국)의 핫셀블라드 그리고 덴마크의 페이즈원 정도다. 이들은 일본 메이커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카메라 시장과는 별 상관이 없는 영역을 아주 조금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사용성 측면에서 보도, 일상생활 등등을 모두 쉽게 아우르는 일본제 카메라와는 다른 경우가 많다. 카메라 개개의 가격도 일본제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사실들에 비추어 보면 "일본에 대해 당당하기 위해서라면 일본 제품을 사용하지 말고 이런 사이드킥 카메라들을 사용하라. 그럴게 아니면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라."라는 식의 반응이 어떤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산업과 시장 구조를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진 취미를(혹은 공부를) 시작할 때 기본적으로(혹은 평균적으로) 사게 되는 카메라 본체와 50mm f1.4 렌즈는 일본제의 경우 그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 하지만 라이카, 핫셀블라드 등의 메이커에서 나오는 제품들은 선택의 폭도 좁고 그 가격도 깜짝 놀랄 만큼 비싸다. 이런 와중에 일본제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 자체에 비난을 돌리고자 하는 것은 온당한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일본제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에 나름의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 그에 대해 굳이 비난을 하겠다면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비난의 대상이 나와 비슷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되는 것 보다는, 혐오와 비난을 부추기는 누군가의 "거봐라 역시 일본은 대단한 나라야. 일본제 카메라를 쓸 수밖에 없는 주제에 왜 일본을 비난하냐?"라는 비아냥을 경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일본이 산업-경제에서 우리나라에 시비를 건 이유는 그 누구도 피해 가기 힘든 반도체 산업에서 갖는 우리나라의 영향력 때문이다.  일본이 다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어 어느 정도의 포지션을 획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나라가 지금부터 카메라 시장에 뛰어들어 일본제 카메라들을 찍어 누르기가 힘든 것과 같다. 적어도 사업효율적인 면에서 따져보면 그렇다. 하지만 하나 분명히 다른 것이 있다. 카메라 산업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양산업이며 반도체 산업은 도대체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도 못 할 수준의 개척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분야라는 점이다. 일본 외의 어떤 나라의 어떤 기업도, 카메라 산업에 새로 뛰어들 생각은 없어 보인다. 카메라 관련 분야는 점차 드론 혹은 웨어러블 형태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 시발점을 끊은것은 말할것도 없이 스마트폰 분야다. 요컨데, 전세계 카메라 시장의 아주 일부분을 라이카나 핫셀같은 유럽 국가들이 가지고 있었고, 그 외 전통적인 카메라 산업을 일본이 가지고 있었으나 곧 그 산업 자체가 사용자들 요구의 흐름에 따라 완전히 변화할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유럽이 가지고 있던 카메라 산업의 중심이 어쩌다 일본으로 몰려 그 시장형태가 역전 되었듯, 곧 일본이 가지고 있던 카메라 산업은 어딘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나라로 몰린다고 보긴 힘들다. 카메라 산업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여 특별한 패권을 갖지 않는 형태로 개편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더이상 기술 집약적 산업도, 고부가가치 산업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기가 오면, 지금의 유럽 카메라들이 가지는 포지션 정도를 일본 카메라가 가질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디지털카메라 수요에 대한 그래프


반도체 산업의 시장 점유율


일본은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한국산 반도체를 어떤 분야에서 사용한다고 할 때, 그들에게 대체제가 없음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방해를 할 뿐이다. 일본 외무상이 도발한 일본제 카메라 안에도 한국산 반도체들이 들어가 있으며 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라는 카드도 사용한 것이다.


21세기가 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일본은 어쩌다 보니 이제는 저물어 가고 있는 카메라 산업을 가졌을 뿐이고, 우리나라는 지금 이 순간 불타올라 터지고 있는 반도체 산업을 가졌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물론 조금 후의 미래 혹은 좀 더 나중 미래엔 뭐가 어떻게 바뀔지 그것조차 알기 힘들다. 그렇기에 시작된 경제 전쟁의 와중에 저 나라의 외무상이란 작자가 고작 "너희들은 일본제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느냐?"라며 도발하는 것을 보면 여러 의미로 머리가 띵 하고 울린다.


하지만, 뭐가 어떻든 간에 그때까지, 어쩔 도리 없이 일본산 카메라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때, 누군가가 독일산 혹은 스웨덴산 카메라를 사서 쓰지 않을 거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굳이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이카 SL / SL2 간단 외형 비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