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생적 트라우마에 대하여
나는 음식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내가 탐식을 하는 것에 비하면 정말 거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음식과 식당에 대한 사진은 찍지 않으며 또 공유(?) 하지도 않는 편인 것이다. 난 그 이유를 내가 말도 안 되게 폭압적인 정서가 깔린 '국민학교'시기를 거치고 졸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기에는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늘 일어났다. 도대체 그 수익금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폐품(신문, 잡지, 빈병 등)을 모아 가져 가는 날이 있는가 하면(가져오지 않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불이익을 당했다.) 크리스마스 씰의 구입(오늘이 이브라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요) 또한 거의 강제적이었다. 금강산댐을 막기 위한 평화의 댐 기부금도 내야 했다. 아무튼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나날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어쩌면 지금도 이슈일 수도 있는)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일기 검사'였다. 우리는 학기 중에 일기를 쓰고 검사를 받아야 했으며 방학 때에도 일기를 써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다른 친구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나의 사생활을 일일이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매우 불쾌한 처사라 생각했다. 나중에 고학년이 되어서는 이것이 집안의 내력을 알아보고 간첩이나 불온 분자를 색출해 내려는 수작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국민학교에선 집에 차가 무엇이 있는지, 집이 월세를 사는지 어떤지, 종교가 무엇인지를 공공연히 거수로 체크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뭔가를 자꾸 캐물어 가려는데 거기다 내 사생활까지 세세히 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 들리 없었다.
하지만 사실을 고백하자면 그 나이 때에 내게 무슨 사생활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자전거를 타고, 테니스공으로 동네 야구를 하고, 가기 싫은 학원을 다니고, 오락실에 가고, 길거리에서 쭈쭈바를 사 먹었을 뿐이다.
그러니 '오늘 한 일'은 딱히 말할 건덕지가 없었고, 따라서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적어야 하는 일기는 결국 '오늘 어떤 특별한 것을 먹었나'로 귀결되었다. 일기는 늘 [오늘은 XY를 먹었다. 참 맛있었다.] 일색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게 나만 일기를 허당으로 썼는가(혹은 삶을 허투루 살았나)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그렇지는 않았다. 이런 일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몇몇 교사들은 "왜 너희들 일기에는 먹는 얘기밖에 없느냐?"며 몇몇 아이들의 일기를 종종 낭독해 주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자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결국 '무엇(좀 특별한 것)을 맛있게 먹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남들에게 가장 흠잡힐 일이 없는 사생활 공개란 것을 어린아이들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던 것이 아닐까 하고 난 생각한다. 조금 센스가 있는 아이라면 어떤 인과 과정을 통해 어떻게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가를 좀 더 예쁘게 다듬었을 것이다. 저학년이라면 거기에 온 가족이 웃으며 식탁에 둘러앉은 그림을 추가해 넣었을 테고.
2019년, 이제는 맛스타그램 (인스타그램 + 맛있는 것)조차 시들해진 시대다. (아닌가?) 하지만 우린 디지털 화상을 마음대로 나누기 시작한 후 언젠가부터 '내가 맛있는 것을 먹었다(경험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받기 위해 열심히 그 정보들을 나눴다.
그것은 물론 반강제적으로 일기를 써서 제출하는 것과는 다른 자발적인 재미 때문에 우리가 흔쾌히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말한 대로 '나'라는 개인이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사생활 공개이자 즐거운 확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토록 즐거운 21세기 어른(어린이들도 물론)들의 그림일기인 맛스타그램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짜로 어린 시절 얻은 그 일기검사 트라우마 때문이다. 억울해 죽겠네 증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