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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do Lee Aug 15. 2020

플랫폼 이동의 고달픔 + 나이 듦

CD에서 APPLE MUSIC으로,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최근 일주일간 책을 대략 1,500권쯤 버렸다. 기본적으로 집안에 책이 '테트리스화' 되어있기 때문에 이 정도를 버려서는 사실 테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잡서 기준으로라도 책을 이 정도로 버리면 마음 한 구석은 쓰리기 마련이다. 1986년에 발행된 손거울이라는 동화책을 솎아낼 때에도, 1988년에 발행된 일본 만화의 해적판을 가차 없이 버릴 때에도 아무튼 가슴 싸한 경험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얼마 전에 사서 아직 읽지도 않은 빌렘 플루서의 피상성 예찬을 '이것도 버려야 하나?' 하는 순간이 왔다. 두둥둥 당당.


어찌 읽지도 않은 책을 버리려는 것인가? 책이 무슨 장식품인가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할 말이 있다.


"아니 알아보니까 이게 벌써(?) 전자책으로 나왔더라고요! 그냥 책 버리기 시작한 김에 모든 책을 가능한 한 전자책화 시키는 게 속이 차라리 덜 쓰릴 거 같다고요. 매번 이사 다닐 때마다 책을 뭉텅뭉텅 버리는 자체가 얼마나 속 뒤집어지는 일인데요. 손으로 파라락 거리며 읽는 맛, 그걸 왜 모르겠어요. 한데 그 맛은 여유가(적어도 책을 쌓아둘 공간적) 없으면 이제 못 누리는 호사 중 하나가 됐단 말입니다요."


롤랑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번역판본만 네 개는 되는데, 이중에 뭘 버리고 뭘 안버리고 한단 말이더냐?!


하지만 아직 많은 학술-예술서적 특히 그림이 많이 삽입된 서적들은 전자화되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한 저자의 인기작은 전자책이 있고, 평작은 없는 경우도 많다. 빌렘 플루서나 존 버거씨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다 보니 요건 버리고 (혹은 중고책으로 팔고) 요건 전자책으로 사고... 하는 식으로 듬성듬성 끼워 맞추는 것도 영 그렇다. 적어도 내 강박증적 성격상 그런 걸 못 견딘다. 책이 있으려면 한 판복으로 좌라락 있어줘야지 암! 하는 괴상한 고집이 내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책을 버리고 전자책으로 다시 살 목록을 정리하고 하는 일은 더디고 더디며 마음이 싱숭생숭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이와 비슷한 일은 한 10년 전쯤 겪었다. 가지고 있던 CD를 모조리 리핑하고 팔아버린 후 (이건 범죄일까?) 거기에 더해 애플뮤직에 가입했다. 내 평생 대략 7백만 원 돈을 애플에 가져다 바치면 그들의 음악 라이브러리를 사용할 수 있다. 내가 모은 7만 곡 정도는 애플뮤직에서 보면 티라노의 발톱 정도도 안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음악의 플랫폼을 옮겼다. 그리고 신비롭게도, 그 후 원래 가지고 있던 CD를 듣던 횟수보다도 압도적으로 음악을 덜 듣게 되었다. 그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너무나 압도적인 라이브러리 분량과 신규 업데이트 속도들에 적응하지 못함이라 생각한다. 아아 이게 나이듦인가 싶기도 하고.


들을게 너무 압도적으로 많으니 도리어 안듣게 되었다는 아이러니. 나만 이런건가?




다시 전자책 이야기로 돌아와, 아무튼 그렇게 애플뮤직처럼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면 과연 책을 전만큼 볼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애초에 책을 많이 읽기나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란 사실이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든다. 내 특기는 고작 잡서 읽고 또 읽기지 새 책과 트렌드를 파보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된 이유가 책들의 글씨가 작아 이제는 침침해진(아...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정말) 눈 때문이었다고 스스로를 달래고, 이제 전자책으로 책들을 열심히 읽어보자! 며 침에 발린 셀프서비스 하얀 거짓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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