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에서 APPLE MUSIC으로,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최근 일주일간 책을 대략 1,500권쯤 버렸다. 기본적으로 집안에 책이 '테트리스화' 되어있기 때문에 이 정도를 버려서는 사실 테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잡서 기준으로라도 책을 이 정도로 버리면 마음 한 구석은 쓰리기 마련이다. 1986년에 발행된 손거울이라는 동화책을 솎아낼 때에도, 1988년에 발행된 일본 만화의 해적판을 가차 없이 버릴 때에도 아무튼 가슴 싸한 경험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얼마 전에 사서 아직 읽지도 않은 빌렘 플루서의 피상성 예찬을 '이것도 버려야 하나?' 하는 순간이 왔다. 두둥둥 당당.
어찌 읽지도 않은 책을 버리려는 것인가? 책이 무슨 장식품인가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할 말이 있다.
"아니 알아보니까 이게 벌써(?) 전자책으로 나왔더라고요! 그냥 책 버리기 시작한 김에 모든 책을 가능한 한 전자책화 시키는 게 속이 차라리 덜 쓰릴 거 같다고요. 매번 이사 다닐 때마다 책을 뭉텅뭉텅 버리는 자체가 얼마나 속 뒤집어지는 일인데요. 손으로 파라락 거리며 읽는 맛, 그걸 왜 모르겠어요. 한데 그 맛은 여유가(적어도 책을 쌓아둘 공간적) 없으면 이제 못 누리는 호사 중 하나가 됐단 말입니다요."
하지만 아직 많은 학술-예술서적 특히 그림이 많이 삽입된 서적들은 전자화되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한 저자의 인기작은 전자책이 있고, 평작은 없는 경우도 많다. 빌렘 플루서나 존 버거씨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다 보니 요건 버리고 (혹은 중고책으로 팔고) 요건 전자책으로 사고... 하는 식으로 듬성듬성 끼워 맞추는 것도 영 그렇다. 적어도 내 강박증적 성격상 그런 걸 못 견딘다. 책이 있으려면 한 판복으로 좌라락 있어줘야지 암! 하는 괴상한 고집이 내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책을 버리고 전자책으로 다시 살 목록을 정리하고 하는 일은 더디고 더디며 마음이 싱숭생숭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이와 비슷한 일은 한 10년 전쯤 겪었다. 가지고 있던 CD를 모조리 리핑하고 팔아버린 후 (이건 범죄일까?) 거기에 더해 애플뮤직에 가입했다. 내 평생 대략 7백만 원 돈을 애플에 가져다 바치면 그들의 음악 라이브러리를 사용할 수 있다. 내가 모은 7만 곡 정도는 애플뮤직에서 보면 티라노의 발톱 정도도 안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음악의 플랫폼을 옮겼다. 그리고 신비롭게도, 그 후 원래 가지고 있던 CD를 듣던 횟수보다도 압도적으로 음악을 덜 듣게 되었다. 그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너무나 압도적인 라이브러리 분량과 신규 업데이트 속도들에 적응하지 못함이라 생각한다. 아아 이게 나이듦인가 싶기도 하고.
다시 전자책 이야기로 돌아와, 아무튼 그렇게 애플뮤직처럼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면 과연 책을 전만큼 볼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애초에 책을 많이 읽기나 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란 사실이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든다. 내 특기는 고작 잡서 읽고 또 읽기지 새 책과 트렌드를 파보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된 이유가 책들의 글씨가 작아 이제는 침침해진(아...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정말) 눈 때문이었다고 스스로를 달래고, 이제 전자책으로 책들을 열심히 읽어보자! 며 침에 발린 셀프서비스 하얀 거짓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