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트레인 부자를 만난 날
2013년의 12월 말경이었다. 연말 분위기에 한껏 고조되어 있었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N과 유명한 재즈 베뉴인 빌리지 뱅가드의 입구에 서 있었다. 그날 우리가 보기로 한 공연은 라비 콜트레인의 공연 이었다. 과거 1960년대 존 콜트레인 더불어 명성이 자자했던 재즈 클럽에서 2013년이 되어 그의 아들의 공연을 본다니, 재즈를 잘 모르는 나 조차도 '이런 경험이 다 있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공연을 되새길 수가 없다. 다른 공연을 몇 번 빌리지 뱅가드에서 보았고 그 공연들이 어땠는지, 어떤 술을 몇 잔 마셨는지 혹은 화장실에는 갔었는지와 같은 조금씩 끊어진 기억들을 그러모을수는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날 라비 콜트레인의 연주가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연주에 대한 기억이 이처럼 완벽하게 날아간 이유는 아마도 공연이 끝난 후 14th street 지하철 역에서 맞닥뜨린 장면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참 재즈를 모르는 내가 잘도 이렇게 빌리지 뱅가드에서 콜트레인의 연주를 다 듣는군.' 이런 생각을 하며 지하철 승강장에 선 순간, 나는 내 눈을 비비며 철로 위에 떨어진 두 사물을 뚫어져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철로에는 색조가 비슷한 두 유실품이 나뒹굴고 있었는데, 하나는 애리조나 아이스티의 빈 페트병 이었고 다른 하나는 존 콜트레인의 인터뷰집 Coltrane on Coltrane이었기 때문에.
그때의 멍하면서도 저릿저릿한 감각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직 라비 콜트레인 공연의 감흥이 가시기도 전에 -비록 지금은 그 공연에 대한 기억을 하나도 하지 못하지만- 그의 아버지와 관련된 책이 길바닥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을 보게되다니. 거기엔 틀림없이 말로 못할 감정의 울림이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과연 재즈의 신이란게 있을지도 모르겠군.' 하는 당돌한 생각을 하며 그 컬러풀한 책의 표지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내 사진으로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