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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놀이공원

병원

by 원숭이

조울증 진단을 받았을 무렵 나는 살짝 놀랐다. 내 추측으로만 생각하던 병이 진짜 내 병이라는 생각에 놀람과 동시에 너무나도 슬펐다. 왜 인지는 너무나도 알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가족 그리고 현재의 가족 그들이 얼마나 나에게 함부로 하는지 그리고 내가 가진 기질을 살펴주지 않는지 내가 얼마나 힘든지 헤아려주지 않는지 잘 알고 있기에 그 생각들이 한 영화의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듯이 날 괴롭혔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파도는 서서히 줄어들고 높이도 낮아질 거예요.”


의사는 날 달래는 다 괜찮아질 거예요 라는 말을 반복했지만 난 들리지 않았다 와닿지 않았다. 의사에게도 속으로는 당신이 나의 상처를 얼마나 진심으로 알까요 그런 말 너무나도 지겹고 전혀 와닿지 않네요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좌절의 말을 듣고는 집으로 돌아왔고 평상시의 하루를 보내게 되니 더욱더 지옥 같았다. 내가 화장실에 가도 휴대폰을 하는 것인지 감시하는 남편, 집안일을 얼마나 했는지 한숨으로 뭐 했어? 말로 힘들게 하는 남편, 그게 내 배우자라는 사실이 날 목 조르고 있었다.


약을 복용하면서 나는 조금 더 미쳐갔다. 차오르는 조증을 감당하지 못한 채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절대 하지 않겠다던 정말이지 좋아하지도 않던 귀금속도 구매하고 코수술 눈수술도 하고 마주치는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과하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학원에서는 수업 중 쓸데없는 농담을 하곤 했다. 많은 모임들을 만들고 술과 담배를 시작하게 했고 아이가 있는데 담배를 시작한 내가 너무나도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한심하고 미안했다. 하지만 몇 번의 금연에도 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날 평생 괴롭혔던 타인에 대한 부정의 믿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타인을 부정하는 생각은 정말 힘들다. 편의점 계산할 때도 버스를 탈 때도 옆에 앉은 사람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마주치는 모두가 속으로는 날 싫어할 거라는 생각이 자리 잡아있었고 그 생각에 적대적이었다. 가면처럼 겉으로는 과하게 웃고 속으로는 불신으로 가득했다.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럴까? 나만 이러는 걸까? 항상 그 생각에 죄책감도 가졌다. 상대가 만약 좋은 사람이고 그런 생각이 아니었다면 너무나 미안한 일이니깐.

그래서 상대가 서운해하는 일도 허다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며.


울증일 때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커서 자살을 기도할 방법을 찾곤 했다. 왜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지 왜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내가 제일 불쌍하고 안 좋게 느껴졌다. 그건 남들에게도 짜증으로 돌아갔다.

파도를 치는 모습에 주위에서는 걱정했다. 병원을 바꿔 봐라 조울증이 확실히 맞는 거냐 남편과 이혼해라 학원을 그만둬라 모두 다른 곳에서 탓을 찾았고 그 마저도 너무 짜증 났다. 모두 때문이잖아 그렇게 말하는 당신들 때문이잖아. 밉고 증오하고 힘들었지만 겉으로는 할 수 있는 건 묵인하고 웃는 것뿐이었다.


난 어렸을 때 첫 좌절을 너무나도 크게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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