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1.
딸깍 딸각 마우스 소리가 점점 옅어져 갈 무렵 하루운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아 너무 오래 쉬었다”
탄식 없는 탄식이 방 안의 공기를 가라앉게 만들고 먼지가 바람 없이 홑홑이 날아다닌다. 하늘은 이유 없이 쨍하고 하늘색이 진하게 그려져 있다. 담배 생각이 문득난 그는 담배 피우는 시늉을 내면서 아쉬워하며 고개를 뒤로 젖힌다. 그러다 고개를 저으며 아니지 아니지 반복한다.
2.
유난히 긴 배차간격을 기다리고 탄 버스에는 사람들이 적당히 있었으나 딱히 앉을 곳도 없었다. 그나마 있는 자리는 안쪽까지 비집고 들어가야 해서 하정은 서서 가기로 결정하고 한숨을 내쉰다.
“이번 정류장은 서울역 환승센터입니다”
하정은 무거운 트래블백을 한쪽 어깨에 다시 매고 버스를 내린다. 구불구불 이어진 횡단보도를 건너며 그녀는 몇 번이고 지나오는 버스에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고작 두 정거장 왔을 뿐인데 그녀는 너무나도 지쳐 보인다.
(시간경과)
“안녕하세요, 오늘 2시에 뵙기로 한 하정입니다. 카메라 세팅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편하게 쉬고 계세요”
평소 같으면 한 시간 전에 와서 그림을 그리며 어떻게 찍을지 고민하던 하정이지만 오늘은 10분 전에 도착하여 다급히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2시 20분쯤이 되어서야 들어오세요 하고 작업을 시작한다.
“네 좋아요 조금 더 싱그럽게 웃어보실까요? 아주 좋아요 조금 더”
그녀는 그녀의 손보다 훨씬 큰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각을 잡아보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모델은 서툴게 포즈를 취했다.
“잠시 쉬었다 할게요, 모델분 잠시 와주시겠어요?”
그녀는 원하는 표정과 몸짓이 잘 안 나오자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모델에게 구체적인 요구를 한다. 모델은 조금 당황한 모습이지만 워낙 유명한 작가에게 작업을 받는 입장으로 긴장한 모습으로 연신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3.
늦은 저녁달이 밝아질 때쯤 터널터덜 편의점으로 걸어가던 하루운은 또다시 하정을 마주친다.
하늘보다 어두운 안색의 하정을 보고는 인사하려다가 하루운도 꿀꿀한 기색에 그냥 지나친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는 하루운은 아르바이트생 뒤로 보이는 담배에 멈칫하고는 금연껌과 저녁으로 먹을 컵밥을 하나 집어 들고서는 계산하고 편의점을 나선다.
금세 깜깜해진 하늘에 크게 보름달이 뜬 것을 본 하루운은 잠시 멈춰 기도를 해본다.
“달님 취직하고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요. 넣은 이력서 중에 하나라도 붙게 해 주세요. 면접 잘 볼자신 있어요!!”
4.
퇴근길에 하루운을 마주친 하정은 짜증이 난 듯 그를 그냥 지나치고 괜히 마주친 그를 탓해본다. 너 때문에 오늘 하루가 망쳤다는 양.
그 순간 번뜩 옛날 20살에 아팠던 기억이 떠오르고 너무 오랜만에 떠오른 생각에 그녀는 스스로가 놀래고 만다. 차오르는 눈물을 잠시 훔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하정.
그녀의 과거는 정말이지 어두워지는 하늘보다 더 까맣게 탄 냄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