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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

바른 자세

by 원숭이

나는 항상 자세에 신경 쓴다. 어렸을 적 굽어진 어깨 등 짧아진 목 모두 신경 쓴다. 어깨를 내리고 허리를 피고 배에 힘을 주고 목은 꼿꼿하게 들고. 이렇게라도 해야 사회 속의 일원이 된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바닥을 보면서 다녔다. 그냥 바닥을 보는 게 편했다. 사람들 눈을 마주치거나 아는 사람 마주치는 게 불편했다. 나는 사물이나 풍경을 보면서 다니는 편인데 그러다 아는 사람 마주치고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때 상대방은 서운해했고 그런 일들이 많아지면서 바닥을 보기 시작했다.

친구와 손을 잡고 집에 가던 저학년 초등학교 시절에 납치를 당할 뻔한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바닥 보고 다녀서 그렇다면서 다그쳤고 앞만 보고 다니라고 했다.

그 이후에도 바닥만 보고 다녔다.


나는 지금도 바닥을 보는 것이 더 편하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 심어진 나무들, 바닥에 깔린 과일들, 사람들의 신발 모두 나에게는 익숙하다. 물론 휴대폰을 하면서 걷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앞을 종종 보면서 길을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만히 앉아있을 때에도 난 바닥을 보는 것이 편하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기질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소심한 사람 대범한 사람 눈치 없는 사람. 모두 선천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심한 사람이다.


나의 지인들은 E 타입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외향성 인간. 가면을 쓴 소심한 사람이다. 하지만 점점 지쳐가고 점점 가면을 든 손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울을 보면 지쳐있고 무기력한 모습이 너무 티가 난다. 이런 얼굴을 보는 내 딸은 어떤 기분일까. 일부러 웃어보아도 다 티가 나고 알 텐데.


그럴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자세를 고쳐서 앉고 서있는다. 앞을 보면서 입꼬리를 올리며 걸어본다. 언제 쳐질지 모르지만 힘내본다. 왜냐면 내 자식이 보기 때문에.


자세를 고쳐먹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입안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굴을 욱여넣는 일이다. 그래야 그렇게 해야만 내 딸이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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