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흑
내가 힘들었을 때 힘이 돼주었던 연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세상에는 너무 잘난 사람이 많다.
예쁘고 키 크고 날씬하고 연기도 잘하고 아니면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하다.
이 사실을 왜 여태 느끼지 못하고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바보같이 내 연기만의 뭔가가 있고 알아봐 줄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고 10년 해봐야지라고 생각했을까.
오디션도 봤다. 독립영화 오디션이었는데 미친 듯이 준비해 갔지만 잘 봤다고 생각했지만 떨어졌다.
뭐 떨어진 걸로 그만둬야겠다 생각한 건 아니고 내가 특출 나게 내세울 게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것 같다.
외모도 못생기지도 예쁘지도 않고 키도 작고 몸매도 좋지 않고 안 좋지도 않고 연기도 매우 잘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애매하다. 어중간하다. 특별한 게 없다. 볼 게 없다.
공무원 공부하려고 끊어놓은 인강이나 들으면서 취미로 공부해야겠다 생각했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자립하고 싶고 잘되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그랬던 내 끓어오르던 무언가가 차갑게 식어 바닥에 떨어졌다.
인생이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괴롭히는 말들을 이제는 버둥거리지 않기로 했다.
살아지니까 사는 거고. 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고.
힘들면 힘든 거고. 맞지 않으면 맞지 않는 거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한 구석만 계속파면 나온다고 뭐라도 나온다고.
그 구석을 파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정신적 불안을 무엇으로 보상받고 치유될 수 있을까. 사람마다 팔 수 있고 못 파고 나뉘는 것 같다.
나처럼 예민하고 불안한 사람들은 파는 게 불가능하다.
어떠한 직업을 갖기에도 어떠한 사람이 되기에도 불가능하다. 어느 때는 힘차고 어느 때는 우울하고 하나에 꽂혔다가 차갑게 식어서 버리고 들쭉날쭉한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또 누군가는 말하겠지. 멘털이 약하다고.
맞다 난 그렇게 자라왔고 그러한 상황이고 나도 바꿀 수가 없다. 발버둥 치다가 벼락에 떨어졌고 난 앞으로 버둥거리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또다시 힘을 끌어올려 어느 순간 버둥거릴 수도 있다.
그렇게 왔다 갔다 살아야 한다 나 같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게 태어나거나 자란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심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멘털거지겠지만 뭐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나의 머릿속 생각을.
불안이 높은 사람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사는 게 버거울 거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지구를 들고 있는 어느 신처럼 지구를 든 것처럼 무겁고 버거워서 계속 가라앉다가 다시 힘내서 들고 그렇게 겨우겨우 산다.
버티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미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그냥 지나쳐줬으면 좋겠다. 참견하지 말고.
오늘 그렇게 난 다짐했다. 포기했다.
배우야 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