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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열무호두 Sep 08. 2020

생애 첫 치아바타

초보 채식러의 비건 베이킹

올리브 치아바타
단면샷. 올리브를 듬뿍 넣었는데, 한 군데로 몰렸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플레인 치아바타
기공이 잘 부풀었다. 약간 더 구웠으면 좋았을 것 같다


치아바타 빵을 구웠다. 

아보카도와 토마토, 그리고 청상추를 끼워 후루룩 만든 샌드위치. 

주말 점심의 메뉴다. 


빵을 구운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치아바타는 꼭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빵은 시간과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맛있는 치아바타는 금방 먹을 수 없다. 

세 시간을 실온에서 발효하고, 삼십분 마다 한번씩 접어주어야 한다. 

반죽을 하지 않는대신, 반죽을 늘여서 접어준다. 

그러면 흐물흐물했던 반죽에 점점 힘이 생기기 시작한다. 

워낙 수분율이 높은 빵이라 도우를 만지기도 힘들다. 

하지만 굽고 나서 만족도는 가장 높은 빵이랄까. 


빵 단면의 기공이 새삼 신기하다. 

박테리아가 가스를 있는 힘껏 내뿜어 빵이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밀가루 반죽 속의 글루텐은 그걸 이겨낸다. 

그러고 나면.. 마치 화산 폭발이 지나고난 현무암처럼 되는 것이다. 

밀가루와 소금, 이스트, 그리고 약간이 올리브 오일..

그리고 공기와 불이 만들어내는 신기한 모양들. 


통밀을 30프로 섞어서 쫄깃한 맛이지만, 입안에 넣으면 부드럽게 사라진다. 

올리브 오일에 발사믹 식초를 떨어뜨린 것을 찍어 먹으면 더 맛있다. 

발사믹 식초의 묵직한 신맛과 올리브 오일의 향긋함이 

치아바타를 더 향기롭게 만든다. 


치아바타는 프랑스 바게트에만 열광하는 이태리 시민들을 보다가

이태리 제빵사가 이태리만의 빵을 만들겠다! 해서 만든 빵이라고 한다. 

이태리 말로 치아바타는 슬리퍼라는 뜻이라고 한다. 

슬리퍼처럼 생겼다나 뭐라나. 


올리브 오일을 넣어 바게트보다 훨씬 부드럽고 입안에서 스르륵 녹는다. 

그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빵 모양이지만, 

치아바타를 구워보고 나니, 다른 이가 구운 빵의 기공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알아주는 막손. 

똥손인 내가 이런 빵을 굽다니!

남들이 보기에는 뭐 저런 빵을 가지고 혼자 칭찬을 하고 난리 부르스인가 싶겠지만....

빵을 만들고 나면 왠지 스스로가 대견해진다. 



남의 것과 비교하자면 물론 훨씬 모자란 실력이지만...

이런 내가 어떻게 이렇게! 

라는 감정이랄까. 

분명 몇 번 더 굽고 나면, 

더 잘 굽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처음에 만든 빵은..


이런 모양이었다. 

발효도, 시간도 필요하지 않은 퀵 브레드.

아이리쉬 소다 브레드. 

나는 빵은 만들고 싶은데 기다리기는 싫어서 이것을 첫빵으로 선택했다. 

원래는 훨씬 모양이 좋지만, 

내가 만들자 못난이 빵이 되었다. 

게다가 베이킹 소다 냄새가 좀 많이 나고, 남편은 목멕히는 맛이라고 했다. 

하나 먹으면 배부른.. 

약간 구황작물 같은 빵이랄까. 

블루베리 잼을 발라 먹으니 먹을만 했다. 


하지만 그 때도 나는 놀랐다. 

막손인 내가 빵이라는 것을 굽다니!

그 때부터 베이킹에 흥미가 붙었던 것 같다. 


치아바타를 굽는데는 특별한 기술은 필요하지 않다. 

레시피대로, 세심하게, 긴 시간을 기다리는 것. 

하룻동안 냉장고에 반죽을 넣어 저온 발효를 시키면 풍미는 더 좋아진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쉽지 않아졌다. 

원래도 혼자 일을 하기  때문에 혼자 있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집 안에만 있는 것이 답답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빵을 만드는 일이 채워준다. 


지금은 일단 인스턴트 이스트로 만들고 있는데, 

오늘 저녁에 천연 발효종까지 만들려고 스타터를 섞어 놓았다. 

아 이럼 안되는데....

하면서 빠지게 되는 베이킹의 매력. 


코로나 때문에 이리 저리 마음이 스산하신 분들이여...

빵을 함 만들어보시라. 

뜻밖의 성취감과 행복감이 마음에 스며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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