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 표지 안에 한 여자가 서 있다. 많이 풀린 듯한 파마, 어중간한 길이의 검은 머리칼, 흰색 니트, 파스텔톤 치마. 그녀는 쇼코일까. 충분히 이국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낯설지는 않은 이름을 가진 어떤 여자를 생각하며 책장을 폈다.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는 일본 문화가 막 국내에 개방되기 시작하던 9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다. 시대의 분위기에 맞추어 추진된 교환학생 행사로 일주일간 주인공 소유의 고등학교와 집을 찾게 된 일본인 소녀 쇼코. 아직 어린 소유와 쇼코, 그리고 늙은 소유의 할아버지까지. 이 셋은 각각의 관계를 만들고, 형식상 단편, 혹은 중편이지만 꽤나 긴 시간대의 이야기를 담아낸 소설의 서사를 이끌어간다.
어린 시절 소유에게 쇼코는 일종의 우상이다. 예쁜 쇼코는 늘 무뚝뚝하기만 하던 할아버지와 엄마를 그녀가 머물던 시간뿐이나마 바꿨고, 소유는 그녀의 말과 태도가, '친절하지만 차가운, 다 커버린 어른이 유치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미소가 마냥 좋았으며, 유두 근처에 애벌레 모양 문신을 할 거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그녀가 멋지다 생각한다. 함께 비디오를 빌려보며, 넌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쇼코의 말은 앞으로의 그녀의 삶에 실제로 영향을 끼쳤다. 그녀와 일주일을 보내며 소유는 쇼코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려 팔짱을 끼고 싶어 하지만, 쇼코는 그것이 동성애적 행위라 생각하여 거부한다.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적었고, 쇼코에게 느끼는 호감은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쇼코의 팔짱을 꼈다. 쇼코는 걸음을 멈춰 서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딱딱한 영어로 말했다. "나는 이성애자야. 너에게 성적인 관심은 없어. 또 다른 동성들에게도 마찬가지야. 난 남자가 좋아."
나는 조금 놀라서 너에게 성적으로 관심이 없다고, 팔짱을 끼는 건 친구들 사이에서는 허물없이 할 수 있는 스킨십이니 오해하지 말라고 말했다.」 '쇼코의 미소' 중
짧은 단락이지만, 이때 두 소녀 모두가 느껴야 했던 무안함은 타인들 사이 존재하는 무한한 간극을 드러내고,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질 수밖에 없어 서로를 이해하기엔 벅찬 사람들 간의 모습을 그린다. 한시적 관계가 가지는 그것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안함, 모호함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각자의 짐작으로 채워야 하는 빈 공간엔 서로에 대한 열등감, 혹은 우월감이 자리한다. 서로에 대한 몰이해를 입증하듯, 쇼코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 자신과 할아버지에게 꼬박꼬박 보내곤 하던 편지들을 통해 소유는 쇼코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는걸, 불우한 가정환경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쇼코에게는 가까운 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겉보기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쇼코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내밀한 우정을 쌓는지 알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속을 열어 보이지 못하는 대신 살을 부딪치며 만날 필요가 없는 외국인에게 외국어로 편지를 써서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만약 내가 일본인이었고, 쇼코의 주변에 사는 사람이었다면 쇼코는 내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쇼코의 미소' 중
소유의 고등학교 졸업과 비슷한 시기에 쇼코의 편지는 끊긴다. 쇼코를 오래 잊고 살던 중, 우연한 기회로 일본에 가 쇼코를 찾게 된 소유는 그녀에 대한 반가움을 느낌과 동시에 한때는 어린 날의 우상 같던 쇼코가 많이 무너져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상한 우월감에 젖는다. 이전에 가졌던 일종의 열등감을 극복하려 하는 듯, 지금의 자신의 삶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소유에게 쇼코는 웃으며, 난 사실 네가 누군지도 모른다 말한다.
「어렸을 때 쇼코가 지었던 웃음과 같은 웃음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차갑고 어른스럽게 보이던 그 웃음에서 나는 쇼코의 나약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읽었다. 쇼코를 나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쇼코는 약했다.
분명히 쇼코도 그때 느끼고 있었겠지. 내가 쇼코보다 정신적으로 더 강하고 힘센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마음 한쪽이 부서져버린 한 인간을 보며 나는 무슨 일인지 이상한 우월감에 휩싸였다.」 '쇼코의 미소' 중
더욱 시간이 지난 후에 소유는 쇼코와의 관계를 매개로 오히려 오래 소원했던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극복하고, 이후 쇼코와의 관계도 극복과, 그 이후 마무리의 단계까지 다다른다. 소설은 두 주인공이 고등학생 어린 소녀이던 시절로부터 서른 살이 넘는 지금의 모습까지, 두 여자의 삶의 장면들과 각자의 인생의 굴곡을 묘사하고, 그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두 사람의 공감대나 고통은 교차와 멀어짐을 반복하지만, 온전한 이해에는 결코 다다르지 못한 둘의 관계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너머의 것을 서로가 쉽게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소설의 종반부 한국을 찾은 쇼코를 소유가 김포공항에서 배웅하는 장면에서 그들은 헤어짐의 포옹에도 몸은 떨어뜨려 팔로만 서로를 감싼다. 이는 어린 시절 내키지 않아 하면서 팔짱을 끼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출국장에 들어서는 쇼코가 건네는 미소를 보며, 소유는 어린 시절 느꼈던 서늘함, 일종의 열등감의 표상을 다시 느낀다. 이는 여전히 그들의 관계는 동등하지 않고, 아직 둘 모두 더 겪어야 할 일들이, 어쩌면 성장을 위해 경험해야 할 일들이 여태 남았다는 걸 암시한다.
이처럼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들은 모두 관계, 혹은 관계의 단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이 성숙한가의 문제는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 정서적인 유대와, 그로 인한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의 등단작이자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표제작 쇼코의 미소의 무게감이 크긴 하지만, 다른 작품들도 이에 못지않은 사색의 흔적과 통찰력을 단정하지만 힘 있는 문장으로 보여준다.
「한지가 밤중에 산책을 하자고 했을 때 거절하지 않고 같이 걸었다면 어땠을까. 한지가 내 노트에 자신의 이야기도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냥 솔직히, 내가 쓰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너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그애가 살리지 못했던 동물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당황해서 침묵하지 말고 '그건 네 탓이 아니야'라고 위로해줬더라면 어땠을까. 민달팽이의 기원 따위를 떠벌릴 시간에, 그애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할 기회를 줬더라면 어땠을까. 혹시 나의 그 단순함이 그애를 숨막히게 한 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내가 너무 자주 그애를 보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애가 혼자 있고 싶어하는 시간을 내가 독점해서 나에게 질려버린 것은 아닐까. 침묵은 나의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했다.」 '한지와 영주' 중
작가의 통찰력은 개인의 내면, 타인들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와 개인이 이루는 관계와, 상호가 가지는 무게의 극명한 차이가 만들곤 하는 상처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2014년의 세월호 참사 이후 대부분의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선 그것에 대한 상처와 충격이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는 걸 볼 수 있다. 여전히 그것은 집단이 공유하는 상처이자, 공동의 재난이다.
「그런 식이었다. 서명운동을 하고 길거리로 나와서 시위를 한다고 해도 그 목소리는 점점 소수의 것이 되어가는 듯했다. 세상은 참으로 빨리도 그 일을 잊어버리고 없던 일로 덮어두자 했다. 점심시간에 누군가가 특별법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가 "지겹지도 않냐"라는 말을 듣고 입을 다물었을 때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 나이 서른하나, 그녀 또래의 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 무엇 하나 바꿔보지 못했다. 세상은 그녀가 온몸을 던져도 실금 하나 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그녀는 그녀의 이십대를 통해 깨쳤다.」 '미카엘라' 중
직접적인 언급 없이도, 작가는 그가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을 추모한다. 타인들 간의 관계에 사회가 관여할 때, 역사적 사건의 형태로 개입하는 경우도 잦다. '씬짜오, 씬짜오'는 타지에서 친구가 된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판단의 깊은 간극을 드러내고,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되새긴다.
「"전쟁요? 그건 구저 구역질나는 학살일 뿐이었어요." 응웬 아줌마가 말했다.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사무적인 말투였다.
"그래서 제가 무슨 말을 하길 바라시는 겁니까? 저도 형을 잃었다구요. 이미 끝난 일 아닙니까?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씬짜오, 씬짜오' 중
앉은 자리에서, 아니 사실은 누운 자리에서 그대로 첫 장부터 끝까지 읽었다. 많은 한국 단편소설들과 특출나게 다른 점은 없었다만, 책 뒤쪽에 수록된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서사의 감각이 있는 작가의 소설이었고, 순하고 맑은 힘이 있는 소설이었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소설을 노트북 옆에 놓고 계속 펼쳤다 접었다 하며 글을 썼다. 접을 때마다 자연히 표지 안 여자가 보였다. 일부러 얼굴을 가린 구도의 그녀는 쇼코였고, 소유였고, 미진이였고, 순애 언니였고, 지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