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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성 Oct 03. 2023

20대, 구단주 - 그래서 회기 유나이티드가 뭔데(1)

브랜딩 찾아 삼만리 - 개인적인 이야기

이건 내 개인적인 이야기다.

나는 축구를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했다.

중학생 때 영국을 다녀왔고, 그곳에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축구 경험을 했다. 그 뽕에 취해 한국에 돌아와서도 축구를 하고싶어 공부를 병행하며 주말리그를 뛰었다. 축구로는 대학을 못가서 학종으로 서울시립대학교에 들어왔고, 그러고도 축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K3에도 들어가보고 독립구단을 찾아 운동을 하다가 결국 그만두었다. 총 11년이었다.


되돌아보면 재미보다는 좀 고통이었다. 마지막에는 '내가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 어떻게 그만둬'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런데 그 생각으로는 얼마 못가더라. 솔직히 말하면 더 열심히 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뭔가가 되리라고 기대하고 시작했던 것이 싫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것을 내발로 떠났을 때는 더 그렇다. 우선 자격지심에 억지로 챙겨보던 해외축구와 국가대표 축구부터 끊었다. 손흥민이 잘한대, 이강인이 잘한대, 소리가 들려오면 그렇구나 했다. 그리고 나보다 더 어린 선수들이 프로로 데뷔하던 것을 떠올리면서 쓴맛을 다셨다. 이게 열등감인가 싶었다. 이 상태가 쭉 지속되었고, 그것은 곧 패배주의로 바뀌었다.


패배주의로 오래 물들면 사람이 좀 이상해진다. 일단 뭔가에 도전하는 게 겁난다. 그렇게 오래했던 것도 그만뒀는데 이거라고 안 그럴까, 하고. 그리고 남들이 농담처럼 '너 그렇게 될 줄 알았어~'하고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움찔거린다. 틀린 말은 아닌데, 괜히 심지가 꼬인다. 그렇게 뒤틀린 심성으로 앞으로는 축구를 멀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다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즐겁게.


다시 축구를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학교생활 때문이었다. 

우리 과에는 '아주르'라는 축구 동아리가 있다. 한때는 전국 랭킹 1위였던 적도 있을 정도로 축구에 대해서는 자부심있는 동아리다. 나는 1학년 때부터 아주르에 소속되어 운동을 함께했다. 지금까지 친한 이들도 모두 아주르에서 만났고, 그들과 축구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다시 축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순수하게 아주르를 응원했다. 해외축구를 보면서도 하지 않던 선수분석을 선배들을 보면서 했다. 선배는 이게 좋고, 저게 안 좋고... 1학년인 내 의견을 경청하는, 꽤나 축구에 진심인 선배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이렇게나 축구를 좋아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선출이랍시고 대회를 뛰지도 못하면서 꼬박꼬박 양구로, 영월로 전국대회를 따라다녔다. 어떤 선배들은 몇시간을 운전해서 와서 한두경기를 뛰고 돌아갔다. 모두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선수들을 응원했다. 나는  그냥 선배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들은 재밌었고, 열정적이었다. 아주 좋은 경기를 한 날에는 낭만 치사량에 술이 필요 없었다. 대학 동아리에 무슨 과몰입이냐 할지라도 나는 그랬다. 내가 겪어온 것과는 다른 결이었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취미와 직업은 같을 수 없고 같아서도 안된다고들 한다. 그것에서 오는 본질적인 차이일 수 있었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축구를 해오면서 느껴보지 못한 것을 아마추어 축구 동아리에서 느끼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었다. 축구를 직업으로 삼겠다고 모인 선수, 코치, 감독 무리 사이에서 축구를 순수하게 좋아한다고 느낀 사람은 한 손에 꼽았다. 대부분은 '빨리 이 팀 떠야지', 또는 '해온 게 이거밖에 없으니까'의 마인드였다. 심지어는 나조차도 그랬다. 그런데 아주르는 아니었다. 아주르에서는 '정말로' 축구가 재미있었다.


'우리 팀'

'우리 선수들'

'이겼으면 좋겠다'

'술자리 재밌다'


나는 축구를 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소속감을 대학 동아리에서 처음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축구 재밌는 거였네?'




실축에서만 재미를 느낀 것은 아니다.

한동안은 피파라는 축구게임에 미쳐 살았다.


장호형과 서울대입구에서 만나 한 자리에서 13시간 동안 피파만 했던 적이 있다. 

한 등급만 승격하면 월드클래스가 될 수 있었다. 월드클래스는 그렇게 높은 등급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시간동안 수없이 승격과 강등을 반복한 후 우리의 위치는 처음 시작한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또 좋다고 다음 날인가 만나서 피파를 했다.


다른 동기의 자취방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이 있었다. 그에게는 피파 게임 CD도 있었다. 나와 동기들은 그 집을 우리집처럼 들락날락했다. 네 명이서 돌아가면서 도장깨기를 하면 그것만큼 재밌는게 또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밥이었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5시간을 축구를 했고, 밥을 먹으면서 축구 얘기를 한 다음에 피시방에서 피파를 하다가 지겨워지면 동기 자취방에 가서 플스로 피파를 했다. 축구를 그만두고 나서 제일 축구를 많이하던 때였다. 


이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름 선수를 해보겠다고 아등바등 보낸 10년이 무색하게 이제와서야 축구가 재밌게 느껴지는게 조금 억울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축구를 그만둔 후에야 소속감과 즐거움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었다. 순수하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는 축구적인 활동은 스트레스를 넘는 즐거움과 설렘이 있었다.


아 축구 재밌는데. 이 사람들하고 졸업하고 나서도 함께 축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그럼 우리가 만들자.


그렇게 별 생각없이 만든 것이 회기 유나이티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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