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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성 Oct 18. 2023

20대, 구단주 - 그래서 회기 유나이티드가 뭔데(2)

브랜딩찾아 삼만리 -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

올 겨울 1월, 장호형이랑 맥주 한잔 하다가 이런 얘기가 나왔다.


"우리 팀을 한번 키워보고 싶다"


장호형은 그렇게 말했다. 형은 회기 유나이티드를 데리고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했다.

그전까지는 유튜브 채널을 하나 만들어놓고 매주 경기영상만 올렸다.

장호형은 그런 것 말고, 생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가뜩이나 일 벌리기를 좋아하는 나는 좋다고 박수쳤다.

우리도 다른 조기축구 팀들처럼 유명해져서 연예인 팀이나 유튜버 팀들과 경기도 하고, 구독자들과 이벤트 매치도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런데 막상 컨텐츠를 생각하다보니 음, 할 게 없었다. 고알레나 JK처럼 축구를 주제로 우리가 퀄리티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가? 아니. 누군가 문상훈처럼 극을 이끌어갈만한 캐릭터가 우리 팀에 있는가? 아니. 슛포러브 처럼 엄청난 게스트를 섭외할 수 있는가? 절대 아니.


내수용 컨텐츠가 아니고서는 일반인들이 축구하는 영상을 누군가 볼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따라하면서 알맹이 없이 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제안했던 것이었다.


"그럼 우리 팬들과 함께 크는 프로구단을 목표로 해볼까요?"




이것은 내가 막연히 느끼던 문제에서 출발했다. 국가대표 경기는 그렇게 열광하면서 왜 프로는? 아, 탑다운 방식이 문제구나. 그럼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밑에서부터 프로팀을 만들어갈 수는 없는걸까.


말도 안 되는 것을 알았다. 왜 지금까지 그런 형식의 팀이 우리나라에 없었는지는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우리 팀이 추구하는 목표가 있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되든 안 되든, 무언가에 도전하는 모습은 재밌으니까.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다.


팀을 키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팬들을 만드는 것이겠지. 

팬들을 만들면 어떻게 해야할까? 축구를 잘하거나 화제성이 있어야겠지.

그럼 우선 승격을 하자.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커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외부적으로 팬들을 모집하자.

이게 우리의 플랜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회기 유나이티드 5개년 계획을 세웠다. 멋드러진 말을 써가며 A4 용지로 정리했다. 언제 승격을 하고, 얼만큼 팬을 모으고....

근데 여기서 더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좋은 말과 목표가 있었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커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한다고 팬들이 생길리 없었다. 승격이 곧 팬이 생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뚜렷하게 보이는 단계가 없으니 힘들게 모은 운영진은 금새 해체됐고, 이렇다할 시도도 없었다. 중간에 뭉쳐야찬다에서 연락이 온 것은 그래서 큰 행운이었다. 무언가 되고 있다는 느낌으로 올 여름을 연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선정된 창업동아리에서 브랜딩 멘토링을 신청했다. 팬들과 함께 성장하는 구단. 되기만 하면 정말 좋은 프로젝트인데 어떻게 비즈니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을지,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물어봤다. 그때는 그것들이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업을 하기 전에 비전과 목표, 미션들이 있어야 한단다. 그게 있어야 중심이 더 단단해지고.. 수익모델은 그 다음이고.... 대표자들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분명해야한다고 했다. 근데 나는 그런게 없었다. 큰 뜻없이 그저 재미있게 공을 차려고 만든 팀에는 대단한 의미가 있지 않았다. 그것을 사업적으로 풀어내려고 하니 있어보이는 단어를 쓰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장호형과 긴 논의 끝에 세운 미션과 비전은 어딘가 공허했다. 분명 맞는 말이고 좋은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시행착오의 방향이 맞는지 계속해서 의구심이 들었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게 있는데. 그게 무엇일까.






앞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난 몇개월동안 우리 머리를 탈모화 시킨 회기 유나이티드의 브랜딩에 대해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괜찮고 멋지게 보이는 이유들을 대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축구 구조상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했으나 그것으로는 나조차도 설득할 수 없었다. 


나는 왜 이런 일을 생각해냈을까. 왜 생각해낸 이것을 해보고 싶어할까. 그것을 파고들어야했다. 


그것을 정리한게 앞편이다. 

https://brunch.co.kr/@hoegi-united/13



결국엔 가장 개인적인 것인 것에서 출발점을 찾아야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브랜딩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고민해야 자연스러운 브랜딩이 나오는 것이었다. 이것을 꼭 사업적으로 풀어내지 않더라도 내 다음 사람이 회기 유나이티드라는 팀을 맡았을 때도 이어지는 정신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내게는 그것이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소속감에서 기인한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나는 축구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을 더 좋아했다. 코시국 때 팬들의 함성이 없던 축구는 정말 노잼이었다. 경기 중에도 내가 혼자 잘하는 것보다 우리 팀원이 좋은 수비를 하거나 좋은 공격을 했을 때 다가가서 어깨를 쳐주는 것이 더 좋았다. 이러한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 내 기저에 깔려있었음을 더 깊이 생각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면서 나는 어쩌면 리그 승격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팬을 위한 팀이 최우선이라면 그러한 활동을 하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우리가 너무 외부에서 먼저 팬을 모으려고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다다랐다. 


회기 유나이티드 대회팀, 즐겜팀에 들어와있는 60여명의 팀원들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초등학교로 치면 4반이나 모여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들과 매주 경기를 하고, 2시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밥까지 같이 먹으면 3시간이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참여율은 낮다. 매번 투표를 독려해야하고, 그래도 숫자가 나오지 않으면 용병을 부른다. 회기 유나이티드와 가장 가까이 있는 선수들부터 참여율이 낮은데 어떻게 밖에서 우리 팀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팬을 모으려고 한다면서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나는 지금, 회기 유나이티드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찐팬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물론 또 다시 다 갈아엎고 다른 얘기를 나중에 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다. 외부적인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병행하면서 내부적으로 우리와 함께 뜻을 같이 할 동료들을 만들고, 그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 기운이 뻗어나가게 하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우리 팀원들이 먼저 팀에 정을 붙일 수 있는 거리들을 많이 만들어주려고 한다. 팀 브이로그를 찍고, 팀 회식을 하고, 팀을 위한 이벤트를 여는 것이다. 그것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우리팀 홍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팀원들의 팀 애정도를 높이는 것이다.


가만. 이렇게 보니 올 겨울 장호형과 얘기하면서 버렸던 것들을 다시 가지고 온 셈이 되었다. 내수용 컨텐츠. 우리 팀을 위한 컨텐츠. 어쩌면 우리만 보고 말 컨텐츠를, 이제서야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우리가 제일 우리 다울 때, 진심으로 함께 즐겁고 행복한 모습을 보이면 팬들도 하나둘씩 생기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을 찾아 돌고돌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과 마냥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우리가 해야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고, 그것을 하면 된다.

현재 있는 사람들이 회기 유나이티드에 속해 있음에 소속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하다. 아직도 내가 하려는 것에대한 본질은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찾아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회기 유나이티드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는 계속해서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소속감과 순수한 즐거움의 가치를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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