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마운 사람

이모, 나의 이모

by 이호은

내게는 엄마가 둘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낳아준 진짜 엄마와,

20년 넘게 나를 키워준 ‘엄마 같은’ 이모다.



엄마는 35년간 교직에 계셨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워킹맘은 흔치 않았다.

게다가 지금처럼 어린이집, 유치원 같은 보육 체계가 잘 갖춰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집에서 외할머니와 이모와 함께 살다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는 이모가 나와 남동생을 전담해서 봐주었다.


커리어에 욕심이 많았던 엄마는 바쁜 선생님이었다.

내 입학식, 졸업식 때도 오지 못했고, 방학 때는 연수를 듣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엄마는 매일 내가 잠에서 깨기도 전에 출근해서

어둑해져서야 매우 지친 얼굴로 바깥 공기를 뿜으며 퇴근했다.

이모는 그런 엄마를 대신해 나와 동생, 우리집 살림까지 살뜰히 보살펴주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매일 새로운 간식이 식탁에 놓여 있었고,

삼시 세끼를 정성스럽게 차려주었으며,

무릎이 아픈 줄도 모르고 맨바닥에 엎드려 걸레질을 열심히 해주었다.

덕분에 우리집은 늘 청결하고 뽀송했다.




사실 우리 이모는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다리 한쪽이 불편하다.

그런 이모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방마다 다니며 걸레질을 했으니,

남들보다 다리가 몇 배는 더 아팠을 텐데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엄마, 아빠가 열심히 돈을 벌어 이모와 외할머니의 생계를 책임져 주었지만,

게다가 바쁜 언니를 대신해 어린 조카들을 돌봐주는 것도 이모가 선택한 길이지만,

그때 이모가 좀 더 이기적인 마음으로 남들처럼 가정도 이루고 직업도 가졌다면 어땠을까?

이모에게 당신의 자식이 있었다면,

조카들을 자식처럼 여기며 자신의 삶을 깎아 먹지 않아도 됐을 텐데…….


언젠가 방 청소를 하다가 이모의 증명사진을 발견하곤 몇 시간을 울었다.

흑백 증명사진 속의 이모는 젊고 단아한, 그야말로 꿈 많은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이모의 잃어버린 20대를 되찾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기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의 무능함이 원통했고,

우리 가족의 생존을 담보로 이모의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을 맞바꾼 것 같아 죄스러웠다.




이모는 나와 동생이 모두 20대 중반이 된 뒤로 더는 우리집에 오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엔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며 10년 넘게 어린이집 주방에서 일을 했다.

이모는 남들이 보기엔 사회적으로 성공하지도 못했고,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연약하고, 가여우며, 도움이 필요한 약자에 가깝다.

하지만 이모는 내게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일깨워 준 사람이다.


나는 이모가 돈이 없어도 되고, 번듯한 직장이 없어도 된다.

내게 이모는 존재 자체로 완벽하기에,

그저 바쁜 일상에서도 이모가 떠오를 때마다 카톡을 보내고

통화를 하며 실없는 농담에 낄낄거리다 끊기 전에 서로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매년 음력 생신을 양력으로 헤아렸다가 잊지 않고 함께 생일 파티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저 항상 건강하게, 나랑 오랫동안 웃으며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빚쟁이다.

세상이 계산할 수 없는 큰 사랑에 빚을 졌기에 평생 갚아도 부족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마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