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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Jun 05. 2018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슨 책을 들고 있을까? 2편

아테네 학당, 인문학, 과학혁명, 신플라톤주의, 라파엘로, 율리오 2세

그렇다면 왜 라파엘로는 굳이 『티마이오스』와 『윤리학』을 그들의 손에 쥐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대표 저서인 『자연학』이나 『향연』이 아닌 『티마이오스』와 『윤리학』이 그들의 손에 쥐여 있을까?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 (Studia Humanitatis), 인문학

14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유럽에서는 인문학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이전 키케로의 인문학과는 조금 다른 르네상스의 인문학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사상가였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에 의하여 정립되었다. 페트라르카는 올바른 사회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역사와 도덕철학, 문법, 시, 수사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신학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초점은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길러낼까? 에 대한 고민이었다.


브루니의 인문학 커리큘럼

메디치 가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학문 연구에 힘쓰고 피렌체에서 최고 공직에까지 오른 레오나르도 브루니(Leonardo Bruni, 1370 – 1444년)는 '페트라르카의 사상이 인문학을 부활시켰다'라고 극찬하며 그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는 고위 공직에 있으면서 자신과 관계하던 재산이 많은 신흥 상공인들에게 새로운 교육 커리큘럼을 제시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중세 대학의 스콜라 철학이 아닌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중심으로 한 독서 커리큘럼이다.  


부자들의 자식 교육, 인문학 과외


농기구의 발달과 더불어 도시화가 진행되고 이에 따라 귀족이 아닌 사람들이 부를 축적하게 되며 상위 계급을 차지하게 된다. 이들은 부(富)가 자녀들의 미래에 끼칠 해악을 알고 있었다. 부의 상속은 자녀들을 탐욕스럽게 만들거나 나태하게 만들 것이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교육이 필요했다. 그들은 아이들을 참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대학에서는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다. 당시 유럽의 최고 대학이었던 파리 대학, 볼로냐 대학, 그리고 살레르노 대학에서는 중세 스콜라 철학이 주를 이루며 '참된 인간'이 아닌 '신의 존재 증명'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프랑스와 영국 간의 100년 전쟁이 일어나도, 유럽 전역에 흑사병이 발병되면서 이탈리아의 부호들이 자녀들을 유학 보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이에 그들은 인문학자들을 따로 고용해 '인간에 대한 학문'을 가르친다.


인문학에서는 자연학보다는 윤리학



역사와 도덕철학, 문법, 시, 수사학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은 당연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에 대한 책보다는,『윤리학』, 『시학』등을 주요 교재로 삼았다. 이 인문학 교육이 가장 활발했던 곳이 피렌체였고 그 시기에 라파엘로는 피렌체에 머물며 이 인문학의 영향을 받았다. 라파엘로가 활동하던 당시와, 그의 무대인 피렌체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은 바로 『윤리학』인 것이다.


과학혁명, 그리고 『티마이오스』


15, 16세기 서구에서 일어났던  르네상스 운동은 고대 그리스 문화의 부활과 함께 과학의 부활도 가능하게 했다. 이는 다시 그리스 과학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가능하게 했고, 점차 비판적인 안목도 키워주었다. 그 결과 16, 17세기를 거치는 동안 그리스 시대의 과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과학의 토대가 형성되는 과학 혁명이 일어났다. 특히, 그중에서도 우주에 대한 플라톤의 사상은 획기적이었다. 자연 세계는 수학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우주의 힘을 네트워크로 보면서, 우주의 힘을 조직하는 열쇠 또한 수학이라는 플라톤의 사상은 순식간에 르네상스인들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것들은 '실험'이라는 것을 가능케 만들었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코페르니쿠스, 뉴턴과 같은 과학자들을 만들어냈다. 


『티마이오스』라틴어 번역본


이렇게 위대한 과학혁명을 이뤄낸 플라톤의 사상이 담긴 책이 바로 『티마이오스』이다. 이 책에서 우주의 제작자인 데미우르고스의 우주를 만드는 과정과 기독교 『성서』에서 나타난 천지창조가 비교가 되면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신은 선하고 그 선함을 닮기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 합일점을 찾아 신학에서도 이 책이 읽히기도 한다. 『티마이오스』는 라파엘로가 이 <아테네 학당>을 그릴 당시에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교황의 서재

'아테네 학당'에서 두 철학자가 들고 있는 책, 르네상스, 신플라톤주의

서명의 방


1편에서 언급한 대로, <아테네 학당>은 라파엘로가 교황 율리오 2세의 주문으로 1509~1510년에 바티칸 사도 궁전 내부의 방들 가운데서 교황의 개인 서재인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에 그린 프레스코 화이다. 이 서명의 방에는 시학, 철학, 법학, 신학을 주제로 한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이 방의 디자인은 율리오 2세가 직접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율리오 2세는 전쟁에 직접 갑옷을 입고 전투를 지휘하고, 교황청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던 가문과 절교하는 등 아주 강력한 교황력을 구사하던 인물이다. 

율리오 2세

그는 스스로를 뽐내기를 즐겼다. 서명의 방은 그런 율리오 2세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 것일지도 모른다. 당시 논란과 각광을 동시에 받던 철학서 두 권을 <아테네 학당>에 등장시키고, 이 그림을 하늘에 있는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지상에서 치열한 논의가 펼쳐지고 있는 <성체 논의>와 마주 보게 위치한 것에도 분명히 이유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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