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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Jun 14. 2018

고흐의 <아몬드 꽃>이 매화처럼 보이는 이유는? 2편

우키요에와 자포니즘 그리고 반 고흐

어둡던 고흐의 그림


비록 정식으로 오랜 기간동안 그림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고흐는 헤이그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 당시에 그에게 영향을 준 화가들은 프라스 할스, 렘브란트, 루이스달 같은 네덜란드의 거장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초기 고흐의 그림은 색채가 강렬하다기보다는 빛을 중요시하는 그림들이 많았다. 이 시기의 그의 그림들은 어두운 모습들을 보인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감자먹는 사람들>이다.


파리에 도착한 고흐



고흐가 파리에 도착하던 시기에는 일본의 상품들을 파리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때문에 일본 그림에 대한 관심도 어느정도 사그라든 상태였다. 그렇지만 이제 막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건너온 고흐에게 우케요에는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우키요에를 수집하고, 모작하고, 그 양식을 차용했다. 당시에는 유럽의 필요에 따라 일본이 적극적으로 우키요에를 보급했다. 일본은 더이상 도자기의 포장재로써가 아닌, 우키요에를 화첩으로 엮어 유럽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우키요에의 수집이 손쉬웠고, 고흐 또한 화실에 작은 일본 판화들을 벽에 붙여 놓고 즐겼다. 이 사실은 <탕기 염감의 초상화>에서 알수 있다. 초상화의 주인공인 탕기 영감의 뒤에는 수많은 우키요에화들이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흐와 우키요에

고흐는 특히 우키요에의 선명한 색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일본 판화에서 본 양식들에서 얻어진 모티브와 묘사 표현방식을 자신의 작품으로 변형시키려 했다. 반 고흐가 동생인 테오 에게 보낸 편지들을 살펴보면 그의 일본과 우키요에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그는 1885년, 안트베르펜의 시기에 바닷가 마을인 그곳의 활기차고 정리되지 않은 듯한 풍경이 일본과 닮아있다고 들떠 있었으며 드 공쿠르 형제의 "일본 취미여 영원히"라고 한 말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일본문화를 사랑하여 <고갱에게 바치는 자화상>에서는 일본의 승려처럼 머리를 깎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로 말미암아 볼 때, 고흐는 일본의 예술뿐 아니라 생활 양식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내가 아몬드 꽃을 매화로 착각한 이유

<아몬드꽃>그림을 보고 매화라고 생각한 것은 고흐의 그림이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매화도와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서양 풍경화나 꽃 그림은 나무 전체가 드러나거나, 꽃병에 담긴 꽃을 그리는 정물화들이었다. 하지만 동양인들은 나무의 가지 부분만 절단 한 듯한 독특한 구도로 꽃을 표현했다. 이것은 고흐가 우키요에의 매화도를 모작한 것으로 보아 짐작이 가능하다.

<가메이도 매화도>(좌)와 고흐의 모작(우)  

 


고흐는 이 뿐만 아니라 다른 우키요에 작품들도 모작했다. 우키요에는 고흐의 그림에 밝고 선명한 색채, 파격적인 구도 등의 영향을 끼쳤다. 그로 인해 그의 그림은 어둡고 빛을 중시하던 화풍에서 밝은 색체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화풍으로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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