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마법사, 샤갈전, 샤갈과 정신분석학
예술의 전당에서 6월 5일부터 9월 26일까지 열리는 <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 전시회를 갔다.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날씨 좋은 날에 데이트하러 온 커플들도 있고, 미술에 관심이 많은 중년부부, 청년들, 그리고 특이하게 아이들이 많았다. 사실 샤갈의 그림은 조금 난해하다. 원근법과 비례 법칙을 무시하였으며,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는가 하면, 동물들이 가끔은 사람을 대신하고 사람이 동물을 대신하기도 한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는 세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의 그림들이다. 이렇게 난해한 그림들을 보고 아이들은 이해를 할까? 나와 같이 갔던 성인들도 그림들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샤갈의 연구가인 봄 두첸은 샤갈의 그림이 인기가 많은 것은 미스터리라고 했다.
마르크 샤갈은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가장 훌륭한 화가로 꼽힌다. 그의 그림은 살아있는 화가 중에 유일하게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샤갈은 카네기 상과 에라스뮈스 상을 수상할 정도로 많은 비평가들에게도 인정받는 화가였다. 그의 그림은 왜 그렇게 많은 인기를 끌었을까? 난해하고 읽기 어려운 그림이 대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신분석학자들은 개인의 정신을 넘어서는 인류 공동의 집단 무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예술은 이런 집단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이 지각할 수 있는 형태인 상징체계로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예술에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샤갈의 그림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예이다. 칼 융은 무의식 중에서도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 집단 무의식은 경험과 습득에 의해 얻어지는 개인 무의식과는 달리,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이면서 동일하게 존재하는 초개인적인 것이다. 이것들은 지역, 문화, 인종의 차이를 넘어서는 가장 원초적이며 근원적인 정신이다.
그 집단 무의식은 어떠한 계기를 만나면 ‘상징’이라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상징을 보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보편적인 경험이나 가치가 떠오르고, 의식이 무의식의 그것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예를 들어, 태극기를 보면 애국심이 생긴다던지, 평온한 마을을 보면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모성애를 느끼는 것들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예술가들은 이 상징을 통하여 무의식 속에 있는 보편적인 경험이나 가치를 예술로 나타내고, 관람자로 하여금 이것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
놀랍게도 샤갈의 그림에는 수많은 가시적 상징들이 등장한다. 수탉, 꽃, 염소, 광대, 바이올린 등의 상징들과 더불어 푸른색, 붉은색, 초록색 등의 색채 상징들도 등장한다.
샤갈이 그려낸 이러한 상징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어린 시절의 추억, 사랑, 고립감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 감정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직한 것들이다. 그렇기에 관람자들은 샤갈의 그림을 관람하고 나면 무의식 속에 존재하던 이런 감정들을 상기하게 되고, 그 감정들의 경험으로 인하여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그 과정은 치유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이론들이 가능하려면 샤갈이 표현한 상징들을 해석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인생에서 어떤 계기들에 의해 무의식 속에 있는 원형을 상징화 하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샤갈의 상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샤갈의 그림세계는 유대교의, 특히 하시디즘의 문화적ㆍ종교적 전통을 기반으로 한다. 하시디즘(하시드hassid는 독실한 사람이라는 뜻이다)은 18세기 중반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나타났다. 이 하시디즘은 율법의 내면성을 존중하고, 신비주의적 요소가 강한 유대교의 경건주의 운동이다. 이 종교는 신의 신성한 불꽃이 세상 만물에 스며들어있고, 인간만이 사물 안의 불꽃을 해방시켜 원래 신에게 되돌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것들에 내재되어 있는 신의 불꽃에 대한 인식 덕분에 샤갈의 그림에서는 동물이나 식물들조차 세계의 일부분이 된다. 모든 것은 화합을 목적으로 한다.
샤갈에 그림에는 여인이 한 명 자주 등장한다. 이 여인은 샤갈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벨라이다. 그림 속의 벨라는 남성이 꿈꾸는 이상의 여인상(아니마)을 드러낸다. 이 모습은 매력적인 외모와 더불어 성스럽고 지혜로운 느낌까지 전달한다. 관람자들은 이 그림을 통해 남성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여성상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사랑’이라는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그림에 드러남으로써 관람자는 안정과 평안을 가진다. 샤갈은 벨라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벨라 사후 몇 년간은 아예 붓을 들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벨라를 향한 샤갈의 사랑은 그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한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는 <사랑하는 연인들과 꽃>에서 벨라와의 사랑에 대한 샤갈의 영감이 아주 잘 표현되어 있다.
샤갈은 태어날 때부터 경계인으로 살아왔다. 그의 부모님은 유대인이지만 고향은 러시아이다. 샤갈은 젊은 나이에 파리로 유학을 가게 되는데, 이 곳에서도 러시아에서 온 유대계 화가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 그 이후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그는 독일, 상테페테르브르크, 미국 등으로 옮겨 다니게 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으로서의 삶은 그의 그림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화합이라는 주제, 수난당하는 예수 등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런 그림들은 공동체에 속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보편적인 욕구와 일치한다.
무의식의 욕구와 후천적으로 생겨난 성격의 대립에 인간은 영혼에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이 상처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저항한다. 이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다. 지친 영혼에 집단 무의식을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표현한 샤갈의 그림은 치유의 역할을 한다.
샤갈은 자신의 작품이 직관을 토대로 창조된 것이며 자신을 지배하는 내적 이미지들을 그림으로 배열한 것이라고 밝힌다 (Damperat, Forestier & de Chassey, 2001). 샤갈의 예술은 무의식에 근거하고 있으며, 작품에 드러난 시각적 이미지는 무의식의 정신활동을 포착하여 어떠한 계기에 의해 상징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이러한 상징들은 보편적인 가치와 경험을 내포한다. 덕분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공동체, 외면, 분리 같은 보편적인 영혼의 상처들이 경계인의 샤갈, 사랑하는 아내 벨라, 모든 자연과의 화해 등의 주제를 담은 샤갈의 그림에 의해 정화되고 치유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예술의 역할 중 한 가지는 바로, 중용이다. 이 중용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신체적이고, 감정적으로 안정적인 상태이다. 이 중용의 상태에 이르면 인간은 행복함을 느낀다. 샤갈의 그림은 상당히 안정적인 상태의 무의식 속 원형을 표현한다. 덕분에 관람자로 하여금 감정적 해소를 느끼게 만들어준다. 또한, 그 경험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여 개인성을 형성하고 개인을 상승하게 한다.
샤갈의 그림을 통하여 그동안 내가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던 내재된 감정을 알게 될 수 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면 미래에 그러한 상황에 닥쳤을 때,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진단은 상처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면 결국 같은 상황에서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예술의 역할의 측면에서 볼 때, 샤갈의 그림은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