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동네책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술호근미학 Nov 05. 2018

과거의 사건에 대하는 자세『기사단장 죽이기』

일본화 최고의 화가의 작업실에서 발견된 의문의 그림

수업 중에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교수님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언급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내가 흥미로워하는 작가인데. 그러면서 생각해 보니, 작년에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장편소설이 나왔는데 안 읽었다. 발간 당시에  『기사단장 죽이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은 왠지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책을 읽는 것 같다고 느껴, 그 책을 읽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아무도 대여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행히 그 선풍적 인기는 사그라든 모양이다.


줄거리

소설 속의 주인공인 '나'는 초상화를 그리는 직업 화가이다. 나의 여동생은 13세 때, 심장 마비로 사망한다.

여동생의 죽음 당시 어떠한 사건 때문에 나는 폐쇄 공포증을 갖게 된다. 나는 성인이 되어 여동생과 비슷하게 생긴 유즈라는 여인에게 마음이 끌려 결혼까지 하게 된다. 어느 날 그런 아내가 이혼을 하자고 나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그 충격에 나는 집을 나와 방황한다.


며칠간의 방황 끝에 아마다 마사히코라는 친구의 숲 속 별장에 머무르게 된다. 그 별장은 아마다 마사히코의 아버지인 아마다 도모히코가 작업실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그 별장의 주인인 아마다 도모히코는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젊은 시절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학을 했다. 그는 그곳에서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어,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다. 외국에 있던 형과는 달리, 그의 동생인 아마다 쓰구히코는 일본에 있다가 군대에 징집되어 2차 세계 대전에 참여하게 되고, 난징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충격에 이듬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동생의 자살 이후로 아마다 도모히코는 서양화가 아닌 일본화를 그리기 시작하고, 일본 내에서 훌륭한 화가에 대열에 이르게 된다.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들어 요양원에 입원해 있고, 그 별장은 비게 되어 친구였던 아마다 마사히코가 나를 그곳에서 머물게 해 준 것이다.

나는 집을 구경하던 중, 우연히 다락방을 발견하게 된다. 그곳에서 나는 종이로 단단히 포장되어 있던, 아마다 도모히코의 일본화 역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한다. 그 그림은 한 사내가 나이가 어느 정도 든 기사를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을 그려낸 것이었다. 거기에는 깜짝 놀란 여인과, 구멍 속에서 흡사 망을 보거나 관조하는 듯한 긴 얼굴의 한 사내가 등장한다. 그 그림의 뒷면에는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작업실에 그것을 걸어둔다.

아마다 마사히코의 별장에 정착을 한지 얼마 안 되어, 가까운 곳에 사는 멘시키라고 하는 중년의 부자가 거액의 금액을 빌미로 초상화를 의뢰하고, 나는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그러던 중 며칠 동안 새벽녘 같은 시간에 방울 소리를 듣게 되고, 멘시키와 함께 그 소리가 나는 곳에 간다. 방울소리는 땅에서 나는 소리였고, 멘시키의 도움을 받아 인부를 불러 그 땅을 파게 된다. 그 땅 안에는 커다란 판자 덮개로 덮힌 큰 구덩이가 있었고, 그 덮개를 들추어 내니 방울이 있었다. 이상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그 방울을 집에 들고 와 작업실에 두게 된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 속에 있던 기사단장의 실체를 보게 된다.

그 기사단장은 60cm 정도의 키에 작은 검을 찬 모습이 딱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 속의 그 기사단장이었다.


메타포와 상징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메타포가 그득하다. 그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한 장면인, 기사단장의 죽음을 이 책의 주제로 삼고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페라에서 돈 조반니는 돈나 안나를 유혹하여, 겁탈하려고 그의 집에 들어온다. 그러다가 돈나 안나의 도움에 달려 나온 그녀의 아버지 기사단장과 결투를 하게 된다. 돈 조반니는 딸이 보는 앞에서 기사단장을 찔러 죽인다. 돈 조반니의 하인은 그것을 구경하고 있다. 이 기사단장이 소설 속에서는 이데아가 되어서 등장한다. 무엇인가를 지키려다가 처음 보는 낭인에게 죽게 되는 기사단장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여인을 유혹하여 겁탈하려고 하며, 잔인하게 그녀의 아버지를 살해한 돈 조반니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그것을 말리기는커녕 망을 보는 돈 조반니의 하인 레포렐로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돈나 나는?

나치와 일본군의 연합에 의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잃었으며, 전쟁의 트라우마로 동생마저 잃은 아마다 도모히코가 이 그림을 그린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것을 주제로 삼은 것 또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그림에 대한 해석과 함께 소설 속 주인공인 나에게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과 등장인물의 관계, 그리고 사물들에 얽힌 메타포를 추론하며 책을 읽어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설계에 감탄하게 된다.


역사적 사건, 홀로코스트와 난징 대학살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소설을 발표했을 때, 수많은 일본의 우익단체들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판했다. 2차 세계대전과 난징 대학살이라는 일본 측에 굉장히 민감할  있는 사건들을 소설에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사건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이 소설 이전에 과거 일본의 만행에 일본은 반드시 사과해야 하며 역사를 왜곡하기보다는 직면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그러한 이유로, 그 두 사건을 하루키가 소설의 어떠한 메타포를 통하여 비판하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비판은 무엇일까?


이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인물들은 하루키의 이전 소설들 속 인물들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모두들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이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누군가는 확신하지만 아닌 척을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괴로워하던 과거에 대해 온몸에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그것과 직면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다. 과거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현재의 우리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아쉬운 점


일본인이 자신의 역사 속 치부를 꺼내, 이런 소설을 쓴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정말 역사를 반성하는 명백한 목적이 드러나는 소설일까? 후에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의 행방과, 사건들에 대한 인물들의 태도를 보면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결국 가해자 측에서의 역사 반성에서만 그쳐버리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북한을 한반도 4차 산업혁명의 출발지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