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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Feb 14. 2019

마르셸 뒤샹이 유명해진 작품은 <샘>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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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현재, 국립 현대 미술관(MMCA)에서는 프랑스의 예술가 마르셸 뒤샹 전이 열리고 있다. 뒤샹전은 개막 5주 만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했다. 마술관 개관 이래로 가장 빠른 속도라고 한다. 대체 마르셸 뒤샹이 누구길래?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셸 뒤샹의 작품을 보여주면 "아 이 작품~!"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 작품은 바로 '샘'이다.


마르셸 뒤샹은 샘을 통하여 본래의 유용성과 도구적 기능을 박탈하고 예술적 의미를 부여한 기성품인 레디메이드 (Ready made) 개념을 창조해 내었다. 


그런데 마르셸 뒤샹이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이 작품이 아니다. 뒤샹이 명성을 얻게 된 작품은 레디메이드 예술이 아닌 회화 작품이었다.


마르셸 뒤샹은 젊은 시절 설치 미술가가 아니었다. 그는 화가였다. 뒤샹의 1911년 이전 초기 회화작품들을 보면 그가 폴 세잔의 그림과 비슷한 그림들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의 그의 그림들인 <예술가 아버지의 초상>이라던지 <Dr.R. Dumouchel의 초상>, <이본느의 초상>들을 마르셸 뒤샹이 그렸다는 사실이 안 믿길 정도로 정통 회화풍의 그림들이다. 



그러던 그는 1911년 파리에서 입체파들과, 시인 아폴리네르 등과 교제하며 추상주의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그 이후로 그는 추상화 그림들을 그리게 되고, 마침내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라는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이 그림은 굉장히 독특한 그림이었다. 입체주의적 요소인 단면뿐만이 아닌 여러 각도에서의 그림이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단순히 멈춰 있는 상태가 아닌 운동성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이 것은 단순히 회화에서 시각적인 요소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바로 생각을 담은 그림이었다. 후에 뒤샹은 피에르 카반느와의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나는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 이전에는 시각적인 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착상(Idea)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회화를 다시 지성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다. 나 자신이 눈을 즐겁게 하고 매혹적이고 물리적인 그림에서 가능한 한 멀어지려고 노력했었다. 그 극단적인 예가 문학적인 주제와 영감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지난 수세기 동안 회화는 종교적, 문화적 주제요, 영감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관객의 지식에 호소해 왔다. 회화는 감각적일수록 더 높이 평가받았다. 마티스의 그림은 물론 훌륭하다. 아직도 물리적 그림의 새로운 경향이 창조되고 있고 19세기 대가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미술은 동물적 표현보다 지성적 표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나는 과거의 전통과 표현에 정말로 짜증이 난다.


그는 이 작품을 '살롱 드 앙데팡당' 전시회에 출품한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그의 그림의 제목과 일부분의 수정을 요구한다. 대상이 나부(누드)라는 것과, 그림의 왼쪽 하단에 있는 적나라한 그림의 제목이 문제였다. 자존심이 강했던 마르셸 뒤샹은 그의 그림을 수정하지 않고, 곧바로 출품했던 작품을 다시 회수한다. 그리고 그는  같은 작품을 1913년  미국 뉴욕에 있는 69 연대 무기고에서 열린 <아모리 쇼> 전시회에 출품한다. 입체파가 시도한 시간과 공간의 분절, 그리고 운동감을 한 화면에 표현한 이 그림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그의 고국 프랑스가 아닌 미국에서 유명세를 얻게 되고, 아모리쇼 50주년의 포스터로 그의 그림이 쓰일 정도로 미국 미술계에서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 

 

아모리쇼 50주년 기념 포스터


하지만 이 사건은 뒤샹이 회화를 더 이상 그리지 않기로 마음먹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뒤샹은 이 이후로, 정통 회화를 그리는 대신, 레디 메이드 활동을 하며 결국에는 화가라는 직업을 포기한다. 대신 파격적인 시도를 한 덕분인지 명성을 얻어 미국의 독립미술가협회의 이사를 맡게 된다. 마르셸 뒤샹은 1917년 미국독립미술가협회의 첫 번째 전시회에 그 유명한 <샘>이라는 작품을 출품한다.


평면에 운동성을 부여한 추상 작품으로 파격적인 행보를 이룬 마르셸 뒤샹의 더욱더 파격적인 개념은 미술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어찌나 그 개념이 앞서 나갔던지, 뒤샹이 중심이 되어 세운 미국독립미술가협회 조차도 그 개념을 두고 예술이냐 아니냐를 토론할 정도였다. 결국 그의 출품작은 전시장 한 구석으로 처박혀버렸고, 전시가 끝난 뒤에 청소부가 당연히 쓰레기인 줄 알고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에땅 돈네>(좌),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서조차 벌거벗겨지는 신부, 조차도>(우)

지금은 <샘>이나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서조차 벌거벗겨지는 신부, 조차도>, <에땅 돈네> 같은 레디 메이드와 설치 미술이 그의 대표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정작 유명해진 것은 바로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라는 그림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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