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술관을 자주 간다. 적게는 한 달에 한 번을 가고 많게는 일주일에 두세 번을 가기도 한다. 대부분은 평일 오전에 시간을 내서 간다. 주말에는 가족단위의 관람객들과 미술관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많아 마음껏 관람할 수 없고, 평일 일과 이후에 가게 되면 폐장 시간이 가까워 작품을 충분히 관람할 시간이 모자란다.
평일 오전 막 개장한 미술관은 한가하다 못해 고요하다. 마치 미술관이 절간이라도 되는 듯이 적막하다. 개장하자마자 업무를 보는 관원들의 대화가 다 들릴 정도이다. 전시장 안에는 작품과 나만의 대화가 가능하다.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한 바퀴를 돌고, 다시 기억난 작품을 찾는다. 그래서 나는 평일 오전에 미술관을 찾는다.
모스크바에서의 이튿날 아침, 나는 트리티야코프 미술관을 향해 길을 나섰다. 유럽 여행을 가기 전, 유럽의 미술관을 소개한 여러 서적을 읽고, 여행 블로그를 방문했다. 그 서적들과 블로그들에서 트리티야코프 미술관은 푸시킨 미술관과 더불어 모스크바에서 가장 인기 있고 잘 알려진 미술관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규모가 꽤 크다고 하니 평일 오전에 방문하여 여유롭게 관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트리티야코프 미술관의 줄
트리티야코프의 개장 시간은 오전 10시다. 11시쯤 도착해 두 시간 정도 관람하고 점심을 먹으면 되겠다 싶었다. 트리티야코프역에서 내려, 구글맵을 켰다. 미술관은 역에서 10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 신호등을 건너 구글맵이 안내한 대로 걸어갔다. 코너 하나를 두고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는 것이 보였다. 미술관 주변에서 연예인의 사인회나 공연이 있나 싶었다. 코너를 도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줄은 놀랍게도 트리티야코프 미술관의 줄이었던 것이다. 어림잡아도 100명은 족히 될법한 사람들이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있던 것이다. 그것도 평일 아침에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유럽의 어느 정도 유명한 미술관은 대부분 당일 표를 사기 위해서는 이와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한다. 그 이유는 관람객들의 쾌적한 관람을 위하여 제한된 인원만 미술관 안에 들여보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평일 오전처럼 극히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출퇴근길의 2호선 같은 환경에서 미술을 관람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피카소 미술관의 줄
사람들의 줄 맨 뒤에 서서 내 순서를 기다렸다. 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마도 미술관 관람객들이 가득 차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긴 줄 옆에 비교적 짧은 줄이 있었다. 게다가 그 짧은 줄은 굉장히 빠르게 줄어들었다. 왜 내가 서있는 줄은 들여보내 주지 않으면서, 옆줄의 사람들은 허락해주는지 너무 궁금했다. 나는 줄 옆에 있던 스태프에게 왜 저쪽 줄은 빨리 줄어드는지 물었고 그녀는 대답했다.
'저쪽 줄은 예약을 한 줄이야'
뭐? 미술관을 예악 하고 온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유럽에 있는 어느 정도 알려진 대부분의 미술관들은 예약이 가능했다. 아쉽게도 당일 예약은 불가능하지만 3일 전부터는 예약이 가능하다. 나중에 이것을 알게 되어서 프랑스의 오르세,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우피치 미술관을 방문할 때에는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하여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트리티야코프 미술관의 예약 페이지
물론 예약을 하지않고 기다렸다가 미술관에 입장할 수도 있다. 실제로 푸시킨 미술관은 예약을 할 수 없어 나는 어쩔 수 없이 2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들어갔다. 물론 내 여행 스케줄은 '아침→미술관→점심→미술관→저녁 끝'이라는 정말 단순한 일정이었기에 2시간 동안 줄을 기다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비싼 돈을 들여 유럽에 와서 여러 가지 스케줄들을 잡아 뒀는데, 예상치 못하게 2시간의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 미술관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다른 스케줄을 포기하는 불상사가 생길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유럽여행 초짜들에게 권유한다. 유럽의 미술관을 갈 때에는 반드시 예약을 하고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