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직원은 나에게 가장 빠른 비행기는 오늘은 없다고 이야기했다. 가장 빠른 비행기는 내일 아침이고, 이코노미 석은 이미 만석이어서 비즈니스 좌석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비행기 값은 할인을 받아도 560만 원이라고 했다. 560만 원이라고? 그러면 유럽 여행 한 번 더 다녀오고 말지...
나는 오늘 모스크바에서 프랑크푸르트로 떠날 예정이었다. 모스크바에서는 2박 3일을 묵었다. 원래 가려고 했었던 모든 미술관들을 다녀올 수는 없었지만, 몇몇의 미술관은 다녀왔기에 후회 없이 빨리 프랑크푸르트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나의 미국 유학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가 살고 있다. 러시아 말밖에 통하지 않고, 음식 맛도 별로인 러시아를 떠나 빨리 그를 만나 한국말로 예전의 회포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행기는 오전 11시 반 비행기였다. 8시에 일어났지만 나는 서두르진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항상 공항에는 출발 세 시간 전에 도착하라고 충고하셨었다. 하지만 20살부터 시작하여 국외선 비행기를 20여 차례 타보니, 출발 1시간 전에만 도착해도 비행기는 탈 수 있었다. 나는 오전 10시에 도착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느긋하게 샤워하고 짐을 챙겨 공항행 급행열차역으로 갔다. 그리고 출발 전 열차역에 매점에서 탄산수 한 병을 샀다.
열차의 좌석은 선착순으로 앉는 자리였다. 나는 내 캐리어를 짐을 싣는 곳에 빨리 정리하고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열차는 곧 출발했고,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열차는 공항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찾아서 열차를 나가려고 하니 내 에코백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열차 안을 뒤져봐도 없었다. 내가 자는 사이에 누가 훔쳐갔나? 이렇게 사람들이 많고 뻔히 보이는 곳에서 대낮에 그런 절도가 일어난다고? 내가 2박 3일간 겪어본 모스크바 치안의 범위 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탄산수를 보며 문득 내가 지갑을 꺼내며 매점 책상 위에 내 에코백을 두었던 것이 생각났다. 에코백 안에 나의 여권과 지갑이 들어있다. 에코백이 없으면 나는 비행기를 탑승하지 못한다.
시계를 보니 9시 50분이었다. 비행기 출발까지는 1시간 40분이 남았다. 재빨리 열차에서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때마침 여객사의 유니폼을 입은 4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를 붙잡고 내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영어를 그리 잘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나의 이야기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바디 랭귀지와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여 나의 뜻을 모두 전하고 나니, 승무원은 이전 역에 내 에코백이 있는지를 알아본 뒤에, 다음 열차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다음 열차 시각을 물어보니 50분마다 기차가 한 대씩 출발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다음 기차는 10시 40분이다. 그 시간에 에코백을 받고, 공항 검색대를 지나 보딩을 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빨리 항공사 프런트로 가서 비행기를 취소하고 다음 비행기를 타야 한다. 다행인 것은 국적기를 예약했기에 비행기를 바꾸는 곳이 가능할 것이고 다음 비행기를 타는 데에도 할인이 적용될 것이다.
운전면허를 따고 나서 몇 달 간은 사고가 나지 않았다. 조심조심 방어운전을 할뿐더러, 가능하면 위험한 상황에 참여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추월하지도 않았고 규정 속도 아래로 다녔다. 어느덧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나는 속력을 조금씩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사고가 났다. 내 왼편에 있던 차량이 우회전을 하려고 했고, 나는 속력이 붙은 상태였다. 결국 사고가 나버렸다. 사고는 익숙한 것이 편해질 때쯤 난다. 비행기를 타는 것은 나에게 어느덧 익숙해져 있었다. 출발 한 시간 전에만 와도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경험이 결국 일을 저질렀다. 만약 내가 항공사에서 권유하는 대로 세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더라면 어땠을까? 결국 나는 그 국적기의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다행히도 나의 에코백은 다음 열차를 통해 안전하게 돌아왔다. 나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나의 상황을 설명한 뒤 아쉽지만 프랑크 푸르트에는 가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