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꿩, 모스크바 현대미술관

현재 러시아가 가진 문제를 보여준다

by 예술호근미학

혼자서 떠나는 여행의 좋은 점은 계획이 틀어져도 뭐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5월 2일 나의 원래 계획은 트리티야코프 미술관을 관람하고, 러시아 바비큐인 샤슬릭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약을 하지 않고 간 트리티야코프 미술관에서 나는 난관에 봉착했다. 한국의 평일 오전 한산한 미술관을 생각하고 방문한 트리티야코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나도 뒤늦게 합류하여 줄을 기다렸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줄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더 많은 시간 줄을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아, 관람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혹여나 숙소 주변에 가볼만한 곳이 있는지 궁금했다. 구글맵을 켜서 검색해보니, 모스크바 현대 미술관이 숙소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마음으로 트리티야코프 미술관 대신 모스크바 현대 미술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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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현대 미술관은 볼쇼이 극장을 지나 메리어트 호텔과 GUM 백화점 사잇길로 올라가다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맞은편에는 동방 정교회의 성당이 있어, 성당을 구경하고 가는 것 또한 좋은 선택이다. 동방 정교회는 우리나라에는 소개가 덜 되었지만 러시아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종교이다. 비잔틴제국 당시에 그리스인 선교사에 의해 전파되었기에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라고도 불린다. 이 종교의 특징으로는 위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의 미학 이론을 받아들여 아름다운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성당에서는 숭고를 느낄 수 있으며 내부의 장식들과 성인들을 그려낸 이콘화(icon)들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한국에서는 쉽사리 체험할 수 없는 기회이니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후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모스크바 현대 미술관을 입장하면 여러 개의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몇몇은 러시아의 구전동화의 내용을 조각화한 것들도 있고 압도될 정도로 커다란 조각들도 있었다. 이곳에는 유명한 푸시킨 미술관이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몇몇 밖에 없었다.

미술관 내부에는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현대 미술관들이 그러하듯,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과 미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현대 미술은 범세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철학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전 세계는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무기와 이동, 운송 수단의 발전으로 인해 국경이 무의미해졌다. 이런 상활에서 예술가들은 모든 이들이 이해할 만한 작품들을 제작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모스크바 현대 미술관에서는 한국에서 만나보지 못할 법한 작품들이 몇몇 눈에 들어왔다.


전시실의 한 공간은 미국 백악관의 집무실을 그대로 모방했다. 바닥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독수리와 성조기가 그려져 있고, 방 한 켠에는 대통령이 집무하는 책상이 놓여 있다. 재미있는 점은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들이다. 포스터들은 국민들에게 전쟁 참여를 권유하는 내용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 인종차별 등 미국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비꼬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미 한참 전이라고 생각했던 냉전 체재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에 대한 자격지심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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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작품에서는 백인들과 그 이외 인종들의 인구비율과, 교육 수준을 인포 그래피로 보여준다. 이것이 예술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저 평범한 통계 인포 그래피 느낌이 들었다. 한 편에서는 사람들이 쾌를 느끼는 그림과 불쾌를 느끼는 그림을 걸어놓고 이 결과가 어떻게 산출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었다. 일 층의 한편에는 수많은 손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 손들은 오른손인지 왼 손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아마도 작가는 차별이라는 주제를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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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러시아 사람은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백인 남성이나, 금발의 장신 여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러시아에는 185개의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다. 문제는 그중에서 권력을 가지고, 고등교육을 받는 인종들이 대부분 백인이고, 이 분포는 다른 인종에 비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인종차별적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 러시아다. 1 년 전, 러시아의 국가대표 백인 축구선수인 알렉산드로 코코린과 마마에프가 인종 차별적인 발언과 함께 한국계 공무원을 폭행했다.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고 부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모욕하고 폭행을 저지르는 일이 러시아에서 벌어진 것이다. 물론 단편적인 예이겠지만 소련 체재 이후로 수많은 민족들이 섞여 살아가는 러시아에서 인종차별과 부의 불균형은 현재 러시아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사회문제들 중에 하나이다.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콘텍스트를 읽는 것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뜻 보아 이것이 작품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작품도 콘텍스트를 이해하면 그 작품의 가치를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예술의 초점 변화, 카메라의 발명,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 스페인 내전 등등의 콘텍스트를 알면 피카소의 그림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실험 대상자에게 미국의 20세기 컨템퍼러리 추상화를 보여준다. 우선 작품에 대한 어느 정보도 주지 않고 그림을 보았을 때 대상자의 뇌를 찍는다. 그리고서 하나하나씩 정보를 주기 시작한다. ‘작품을 그린 화가의 이름’ ‘작품의 제목’ ‘평론가의 설명’ ‘작가의 설명’ 마지막으로 ‘작품의 경매가’로 이어지는 정보를 차례차례 준 후 뇌 사진을 찍는 과정을 반복한다. 실험 결과는 “정보를 하나씩 줄 때마다 통상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크게 판단하게 된다”로 귀결되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아는 만큼 보이고, 알면 사랑하게 되고, 좀 더 그 미적 가치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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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모스크바 현대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이 서울에서 전시되었다면 나는 이 전시를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내 눈 앞에 놓인 작품이 어떤 콘텍스트에서 제작되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러시아의 역사를 이해하고, 며칠 동안의 생활은 모스크바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예술작품들의 이해로 이어졌다. 내가 가려던 트리티야코프 미술관은 러시아의 고전,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인데 반해, 모스크바 현대 미술관은 현존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 모스크바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어떠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모스크바 현대미술관을 방문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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