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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Dec 23. 2019

빠르게 달리다가 속도를 줄이고 코너에 진입했다.

인생의 진로를 바꾼 이들을 위한 위로

일이 있어 강원도에 차를 운전해서 가게 되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창문 밖으로 북한강을 보니 마음이 편안했다. 평일의 한 낮 고속도로는 차가 별로 없었다. 마음껏 속력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발목에 힘을 주어 엑셀을 깊게 밟았다. 자동차는 미끄러지듯 점점 가속을 냈다. 직선코스에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주행하던 중, 급 커브 구간이 나왔다. 급 커브에 진입하기 전, 나는 가속 페달에서 잠시 발을 뗐다. 이 속도로 커브에 진입하면 차는 커브를 이기지 못하고 길에서 밀려날 것이다. 그렇게 속력을 떨어뜨린 상태에서 급 커브에 진입했다. 자동차는 직선을 달리다가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였다. 커브를 조금 돌아보니, 이내 그 커브에 익숙해졌다. 나는 다시 가속 페달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 진입할 때보다 빠른 속도로 그 커브를 벗어났다. 다시 직선 코스가 나오고 자동차는 이전의 속도를 되찾았다.

얼마 전, 친구가 회사를 그만뒀다.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많은 연봉을 주는 안정적인 회사에서 일하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한국에서 있던 모든 커리어를 정리하고, 외국으로 갔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갑자기 외국에 나가겠다고 하니,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많은 걱정을 했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서른 중반의 나이에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을 다 포기하고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가혹하게 비쳤다. 오랜만에 친구와 연락이 닿아 이야기를 들었다. 외국에서 그의 시작은 녹록지 않은 모양이다. 이미 몇 달이 지났고 어학 기간도 끝났다. 설렘에 부풀었던 마음은 가라앉고, 통장의 잔고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또한 들었다. 이러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가는 건 아닌가 하며 걱정을 했다. 

그는 오랜 기간 한 길을 안정적인 속도로 주행하다가 진로를 변경하려 코너에 들어섰다. 그는 이전 회사에서 몇 년 동안 해왔던 같은 일들에 익숙해져, 좋은 성과를 내고 안정적인 속도를 가졌다. 그 모습은 마치 직선코스를 주행하는 자동차와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 직선을 벗어나 다른 진로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진로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코너에 진입해야 한다. 코너에 진입하는 순간의 속도는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몇십 년 동안 말했던 언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를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다. 당연히 그 속도는 예전만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코너를 벗어나는 순간 그는 이내 속도를 되찾을 것이다. 다시금 새로운 환경은 익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안정적으로 또 다른 직선에 올라설 것이다. 


삼십 대가 되니, 진로를 변경하게 되는 일이 잦아졌다. 나 또한 회사를 다니다가 사업을 하고, 학교를 다니게 되고,  지금은 비영리 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다. 문제는 진로를 변경할 때마다 드는 걱정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길이 과연 맞을까?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도 않고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아닌가? 공부를 하지 않으니 점점 무식해져 가는 것 같다 등의 생각들이 든다. 그러나 알고 있다. 이 일들도 곧 나에게 익숙해질 것이다. 나는 지금 코너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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