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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Dec 25. 2019

속도가 중요하지 않은 건, 나 혼자 살 때 얘기다

규정속도, 비상등

캘리포니아의 고속도로 규정속도

미국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의 규정 속도는 60마일이다. 킬로로 하면 아마 95-6킬로 정도이다. 특이한 점은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60마일을 넘어서도 안되지만, 60마일 밑으로 떨어져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만약 60마일을 넘어 과속하게 되면, 숨어있던 경찰차가 바로 뒤에 따라와 길 가에 차를 대라고 할 것이다. 반대로 교통체증이나 사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60마일 밑으로 느리게 운전하면, 그때에도 경찰차는 당신의 차를 길 가에 대라고 할 것이다. 그 이유인즉슨, 지나치게 느린 속도 또한 다른 차량들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에서는 60마일에 가장 가깝게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2011년에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책이 발간됐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박사가 경쟁에 너무 치우쳐 정작 중요한 것들을 잃고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 대해 던지는 메시지가 책의 내용이다. 이것은 사실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가 이전에 한 말이다. 인생에 있어 더 빠르게, 더 많이 어떠한 것을 이루는 데에만 급급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방향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명언이다. 아무리 빠르게 열심히 달려봐야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면, 헛수고를 한 셈이 될 테니 말이다. 때문에 옆에 사람들이 어떤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보다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정말 맞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방향만 옳다면 조금 늦게 가더라도 결국엔 내가 원하고자 하는 바를 이룰 것이다.


혼자 살아간다면


앞서 말한 괴테의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속도에 나를 맞추지 않고, 나만의 속도를 가지고 정확한 방향으로만 묵묵히 살아가려 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누군가는 빠르게, 또 누군가는 느리게 달리고 있다. 그와는 상관없이 나는 내 주행할 수 있는 속도에 맞춰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운전을 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금 달리고 있는 구간에 맞는 규정속도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인생에는 규정속도라는 것이 없다. 하지만 규정속도가 만들어진 배경은 '함께 달리는 사람의 안전하고, 원활한 주행'을 위함이다. 만일 내가 결혼을 하게 되고, 가족이 생기고, 어떠한 특정한 방향을 가족들과 함께 달려간다면 규정속도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함께 달리는 사람을 배려한 규정속도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아무도 달리지 않는 도로에서 나 혼자 주행하는 것과 같다. 과속을 하든, 느리게 달리든 아무 상관이 없다. 누군가가 굉장히 빠른 속도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너무나도 느린 속도에 답답해할 일도 없다. 그러나 누군가와 같은 방향으로 함께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면, 우리는 서로가 원활한 운행을 할 수 있는 정도의 규정속도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 한 명은 따라가기에 급급해 금세 지쳐버릴 것이고, 누군가는 속도를 맞춰주지 않는 동반자 때문에 답답해할 것이다. 예를 들어, 연애를 하고 결혼이라는 특정한 한 방향을 향해 함께 달려갈 때에, 서로의 속도가 다르다면 둘 모두가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결혼을 하고 난 뒤, 집 장만이라는 특정한 방향을 향해 달려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검소하게 돈을 아껴 빠르게 집을 사고자 하고, 누군가는 지출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도착 시점을 멀리 가져간다면 두 명은 서로에게 어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레이스를 시작하기 전, 먼저 서로가 약속한 규정 속도를 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서로가 안전하고 원활하게 같은 방향으로 주행할 수 있게 해주는 약속이다. 


비상등

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 앞 차가 갑자기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줄였다. 이에 나도 비상등을 켜서 뒷 차에게 급격히 속도가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몇십 미터 주행해보니 앞에서 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고, 3차선의 도로가 2차선으로 줄어들어 불가피하게 차량들이 차선을 바꿔야 했다. 그래서 모두가 차선이 합쳐지는 지점에서 속도를 줄여야만 했다. 

이처럼 도로에 규정속도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차량이 고장 난 다던지, 사고가 있다던지, 공사를 하게 되면 그 규정속도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자동차가 그렇듯이 사람들도 몸과 마음이 규정속도를 지킬 수 없는 상태가 될 때가 있다. 이때에는 규정 속에 맞춰 주행할 수 없는 상황의 차량이 비상등을 켜서 함께 달리는 차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려야 한다. 그리고 규정속도를 벗어나 속도를 줄이거나, 길가에 잠시 차를 주차하고 차량을 점검해야 한다. 앞차가 비상등을 켠다면 뒷 차는 기다려 줘야 한다. 그것은 도로에 진입하기 전 이미 약속된 것이다. 다른 차의 비상등을 보면 필시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 거라고 이해해줘야 한다. 인생에서도 규정속도에 맞지 않는다면 비상등을 켜야 한다. 그때에 비상등을 깜빡이는 이 사람이 규정속도에 맞게 주행하지 못할 것이라 이해해준다. 


당신의 속도는 어떠한가?

이제 당신의 속도는 어떠한가? 혼자 달리고 있다면 아무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형제, 연인, 배우자와 같이 달리고 있지는 않는가? 물론 함께 동의한 규정속도에 잘 맞춰 달리는 당신 덕분에 상대방도 안전하고, 원활하게 같은 도로를 주행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빨리 달리는 당신 때문에 당신과 함께 달리고 있는 누군가는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아니면 너무나도 느리게 달리는 당신에게 말은 못 하지만 함께 달리는 그 사람은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을 수도 있다. 그러한 상황들에 있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당신에게 비상등을 켜고 신호를 보내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속도를 잠시 멈추고 상대방의 상태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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