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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Jan 03. 2020

같은 공간에 있다고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하진 않잖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세 남자], 이별을 받아들이는 법

수많은 만남

2006년 미국 베이직 북스에서 발간한 『개처럼 키워진 소년과 아동 정신과 의사의 다른 이야기 』에서 저자인 Perry, B, D는 현대 사람들이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는 원시시대에 비해 현저히 높다고 이야기한다. 원시시대에는 부족 사회이기 때문에 일 평생 가족들만 만난다. 50여 명의 사람들만이 그들이 일생동안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1200년대쯤 되면 가족 구성원의 수는 줄어들지만, 마을이 생겨 평생 동안 약 200여 명의 이방 사람들을 만났다고 한다. 이 숫자는 현대인이 뉴욕 맨해튼에서 한 사람이 하루에 만나는 양보다도 적다고 한다. 월마트의 입구에 있는 보안 요원은 하루에 평균 1700여 명의 사람을 만나다고 하니 말이다. 


헤어짐, 연애에서의 헤어짐

우리는 가족, 학교, 직장, 교회, 동아리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개인적인 연유로 인하여 이혼을 하기도 하고, 전쟁이나 죽음을 통해서도 가족의 해체를 겪기도 한다. 짧게는 한 과목, 한 학기, 길게는 몇 년 동안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면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난다. 직장이나 교회 동아리들도 마찬가지이다.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은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그동안의 함께 쌓은 추억들을 뒤돌아 보면 아쉬움과 그리움이 있다. 그것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연애를 할 때도 우리는 헤어짐을 겪는다. 문제는 연애를 할 때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것보다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연애를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보다 연인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굳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않아도 될 법한 이야기들도 나누게 되고, 함께 같은 경험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는 하지 않는 성행위 들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유대감을 느끼게 하고, 연인이 내 삶의 일부라고 느끼게 만든다. 때문에 연애의 헤어짐은 내 삶의 일부가 깨어지는 듯한 고통을 수반한다. 이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방법에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문득 얼마 전 보았던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세 남자들] 조각을 통해, 작가가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알베르토 자코메티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을 처음 본 것은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은 포즈인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사실 처음 그걸 봤을 때 이게 왜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지 의아했다. 앙상한 뼈대만 있고 특별히 무엇을 상징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삶을 이해하게 되니 그의 작품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는 18살 무렵 한 노인과 함께 여행을 하던 중, 그 노인의 죽음을 직접 옆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 이후 그는 생애 2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임하게 된 듯하다. 걸어가는 사람은 결국은 죽음으로 이어질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걸어가는 인간 상의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걸어가는 세 남자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1948년작인 [걸어가는 세 남자들]은 한 석판 위에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걷고 있는 세 남자들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자코메티가 파리의 광장을 유심히 지켜보던 중,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고 영감을 얻어 제작한 작품이다. 같은 공간인 광장에 존재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걷고 있다. 전쟁이 종료된 지 5년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파리의 시민들은 과거의 헤어짐 들을 잊고 자신의 삶을 향해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은 이런 사람들의 의지를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작품의 세 남자는 한 석판이라는 같은 공간 속에 존재한다. 그들을 그 멈춰있는 그 시간 동안 분명히 같은 공간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방향을 향해 걷고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같은 공간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같은 공간 속에 존재하지만 각자가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 결국엔 다른 공간에 존재하게 되는 것처럼, 같은 공간 속에 있던 사람들과의 헤어짐도 결국 받아들이고 내가 걷던 방향을 향해 꿋꿋이 걸어 나가게 된다는 것을 표현한 듯하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모두가 같은 곳을 향하진 않잖아

자코메티의 작품처럼 우리의 연애는 어쩌면 다른 방향을 향해 걷던 중 잠시 같은 공간에 머문 것일 수도 있다. 같은 공간에 있었기에 우리는 연인이 나와 같은 존재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고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헤어진 연인은 아마도 나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것에 너무 연연해할 필요는 없다. 헤어진 연인은 자신이 바라보던 방향을 향해 걸어 나간 것이고 당신 또한 그 방향을 행해 걸어갔을 뿐이다. 

물론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추억을 잊으려면 분명히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오랫동안 넘어진 채로 이전에 있던 그 공간 속에 머무르지는 않기를 바란다. 다시 일어나 당신이 향하고자 했던 방향대로 걸어가길 바란다. 그렇게 걷다가 만난 누군가는 나와 같은 곳을 향해 걷고 있을 테니까. 그 사람과 당신의 길을 함께 걷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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