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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Oct 05. 2015

피카소는 무엇을 그리려고 했을까? - 전반부

#피카소, #현대미술, #아비뇽의처녀들, #세계에서가장비싼그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이번에는 피카소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피카소 알아. 눈썹 없는 여자 그린 사람이잖아.”

“아...모나리자? 그건 다 빈치가 그린 거야....”     


명실공히 피카소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몰라도 피카소는 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 ‘제 2의 피카소’는 최고의 칭찬이다. 그의 그림은 그가 생존하던 시대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크게 평가 받는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 세계적인 거부인 커르트 루드스타인이나 슈츠킨은 그의 그림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고, 볼라르는 피카소의 ‘장미빛 시대’의 그림을 모두 구매했다. 현대에는 그림 값이 비싸면 높이 평가 받는 화가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점 중 2점의 작품이 피카소의 작품들이다. (화가 중 유일하게 2점의 그림이 순위에 오른 화가이다.) 이처럼 피카소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가장 인기있는 화가 중 한명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3위와 8위; 꿈, 파이프를 든 소년


재미있는 사실은 피카소 하면 ‘추상화의 대가’라고 인식 한다는 점이다. 그 것은 초등학교, 증고등학교 12년 정규교육과정의 산실이다. 미술책에 실린 피카소의 그림들은 대부분 추상화들이다. 현실을 변형을 뛰어넘어 해체하고 파괴한 듯한 그림들이 실려 있다. 그의 그림은 ‘잘’그린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그림을 못 그리는 이들에게 조롱하는 뜻으로 너의 그림은 피카소의 그림 같다고 말할까. 피카소의 그림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그가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 알 수 없다. 대체 피카소는 무엇을 그렸고, 왜 이런 그림들을 그렸을까?



피카소에 대한 오해: 추상화 화가     


사실 피카소의 그림들이 모두 추상화인 것은 아니다. 그의 대표작들이 대부분 추상화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추상화 화가로 단정 짓기에는 그의 작품 수가 너무 많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유화 1만 5천점, 판화 10만점, 뎃생 3만 4천점 등 15여만점의 그림과 만여개의 조소를 제작했다. 그는 하루 평균 7개의 작품을 완성했다. 이렇게 많은 작품 중에는 추상화 뿐만 아니라 고전풍의 그림들도 상당히 많다. 그렇기에 피카소의 모든 그림들이 다 난해한 것은 아니다. 자, 그림을 보면서 한 번 살펴보자.

<맨발의 소녀>, <스무살에 그린 자화상>, <원숭이와 함께 있는 곡예사 가족>

왼쪽으로부터 첫번째 그림은 피카소가 14살 때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고전주의 화풍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인물의 형태 또한 완벽한 모습을 보인다. 다음은 이른 바 ‘청색시대’의 작품이다. <20살 때 그린 자화상>을 살펴보자.

그의 그림은 여전히 고전주의 화풍을 보인다. 20대 중반 ‘장미빛 시대’의 <원숭이와 함께 있는 곡예사 가족> 작품도 색채와 느낌만 다르다.

이 작품들 이외에도 피카소는 수많은 고전주의 화풍의 그림을 그렸다. 그의 젊은 시절의 그림들을 살펴보면 그가 상당히 ‘잘’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소개 된 그의 작품들을 보아서는 문제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그가 논란의 중심이 되고, 그 논란이 현재의 미학도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좌에서부터>

1907년, 피카소는 한 점의 작품을 친구들에게 소개한다. 그림은 피카소가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던 폴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과 비슷한 그림이었다. 문제는 세잔과의 그림과는 달리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심하게 왜곡 되었다는 점이다. 얼굴의 형태는 피카소의 친구 마티스가 산 아프리카 조각을 닮아 있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방식으로 자코메티와 모딜리아니도 아프리카 조각상의 얼굴형을 따오곤 했으니 이해할만한 시도이다.

아프리카 가면들과 아비뇽의 처녀들의 얼굴형

문제는 얼굴에 나타난 눈코입의 모습이다. 그가 그린 얼굴은 정면을 바라보는 것인지 옆을 바라보는 것인지 알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가씨들의 몸 또한 인간의 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비율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친구들은 그의 그림에 경악했다. 피카소는 현실 그대로가 아닌 자신이 직접 인식하는 방법대로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는 이 표현 방식을 다른 그림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친구인 조르주 부라크 또한 이 표현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냈다.

<둥근테이블> 조르주 부라크

재미있게도 친구들에게 외면 받은 이 그림들이 평론가에게는 호평으로 이어진다. 당시 평판이 괜찮던 평론가 루이 보셀이 그들의 그림을 알아본 것이다. 그는 평면이 아닌 정육면체 같은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의 그림들을 '정육면체적 기형' (Cubic Oddities)이라고 명했고, 대중은 그들에게 '큐비즘'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때부터 피카소는 급격하게 유명해졌다.  

그 이후로는? 피카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추상화 작품들을 끊임없이 제작하였다. 그는 <투우경기>, <황소머리>, <새벽의 연주자>, <게르니카>, <한국에서의 학살>, <마리 발테르의 초상화>, <통곡하는 여인>, 애원하는 여인> 등의 추상화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후반부에 계속 ← 클릭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애원하는 여인>, <통곡하는 여인>, <마리 발테르의 초상화>, <새벽의 연주자>, <황소머리>

큐비즘에 대한 영상 클립: https://youtu.be/k6WnZSoSK_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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