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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Apr 27. 2020

나는 어떻게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는가

브런치의 시작

내 인생에서 '한 편의 제대로 된 글'을 써본 첫 번째 기억은 중학교 때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어시간이었다. 담임이자 국어 선생님께서 학교 백일장이 있으니 이 시간에 자유 주제로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백일장에 나가서 상을 타고 싶은 학우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을 텐데 이렇게 강제로 글을 쓰게 한다는 것이 불편했다. 왜 학교는 우리들에게 같은 모습을 강요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상어가 되고 싶은 붕어빵'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상어가 되고 싶은 붕어빵이 있었다. 그는 밀가루 반죽에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나는 나중에 상어가 될 거야'라고 항상 말했다. 친구들은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그를 말렸다. 그리고 그 밀가루 반죽은 붕어빵 틀에 부어졌다. 그는 틀의 모양대로 가만히 있으면 상어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그 틀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다. 하지만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결국 그는 밀가루 반죽이 튀어나오고, 옆구리가 터져버린, 상어도 아니고 붕어도 아닌 모양으로 익어 버렸다. 붕어빵 장수가 틀을 열고 그를 발견했을 때 욕을 했다. 그리곤 상품 가치가 없는 그를 쓰레기 통에 버렸다.


강압적이고, 틀에 박힌 똑같은 모습을 요구하는 제도권 교육에게 '어디 한 번 당해봐라' 하고 쓴 글이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선생님께 반항해서 받는 꾸지람은 친구들에게 자랑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꾸지람을 받더라도 기분 좋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았고, 내 글은 그 해 교지에 실렸다. 그때 나는 '이런 글을 써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직설적인 말로


"선생님 왜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데, 똑같은 모습을 강요하세요? 백일장은 자유 아닌가요?"


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선생님은 꼴값 떠네 하며 내 머리를 쥐어박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작정하고 비꼰 글에는 문학성이 있다며 상을 주며 칭찬해 주셨다. 그러고 나니, 글이라는 것은 내 생각을 알리는 굉장히 세련되고, 우아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주장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아는 가장 세련되고 정중한 의사표현이었다. 하지만 그런 글들은 보관하기 어려웠다. 내가 써놓은 노트들은 잃어버리기 십상이었고, 나 혼자 내 의견을 썼을 뿐 그것을 누구에게 보여줄 기회도 없었다.


그러던 중 페이스북이 등장했다. 페이스북을 통하면 내 글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을 것이고,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쉽게 전달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내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전시회를 가거나, 책을 읽은 후 어떤 것들을 느꼈는지 페이스북에 꾸준히 올렸다.


그러던 중 카카오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아는 형에게 연락이 왔다.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 중인데, 내가 생각이 났다고 했다.  

브런치를 한 번 써보니 글쓰기에 최적화된 플랫폼이었다. UI가 글을 쓰기에 쉽게 설정되어 있었고, 그 당시에는 이용자도 없어서 내 글을 저장해놓기에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어떤 글들은 페이스북에 올리기 싫은 글들도 있다. 너무 철학적이거나 나를 cool해 보이지 않게 하는 그런 글들 말이다.


하지만 브런치에는 어떤 글이든 올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정 안되면 작가의 서랍이라는 곳에 잠시 저장해놓으면 그만이다. (아직도 내 서랍에는 발행하지 않은 글들이 수두룩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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