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rto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술호근미학 Jun 10. 2020

르네 마그리트는 왜 저렇게 그렸을까?-3편

페르낭 소쉬르의 언어의 자의성, 김춘수의 꽃

김춘수 님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던 걸까?


르네 마그리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복잡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좀 해보자.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있다.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아주 유명한 시이니 대부분 알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시인은 이야기한다. 의미 없는 여러 몸짓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에게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리고 그 몸짓은 그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시인은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여러 몸짓 중에 하나를 골라 새로운 이름을 짓고, 그것을 불러주었을까? 이미 이름을 알고 있었다면, 왜 부르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을까? 



그리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이 문장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나와 취향이 맞는 누군가가 '김춘수'라는 이름을 불러달라던지, 아니면 '나의 모습에 맞는 이름'을 누군가가 불러달라든지.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봐라 어디에 더 가까운 것 같은가? 아마도 전자로 해석을 하면 김춘수라는 '그의 이름'을 빛깔과 향기가 알맞은 꽃 같은 누군가가 불러준 것일 테고, 후자로 해석하면 꽃 같은 '나의 존재'를 누군가가 불러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인은 애초에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일까? 아니면 빛이 나고 향이 나는 꽃 같은 '그의 존재'를 알아본 것일까? 어찌 되었든 시인은 '너나 나나 서로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라고 말한다. 


이름은 어떻게 지어지는 걸까?


스위스의 페르낭 소쉬르라는 언어학자는 언어가 곧 사고라고 말했다. 언어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자체가 사고라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고? 이 문장은 소쉬르 이전 세대에서 단어를 선택하는 과정과 소쉬르가 강의했던 『일반언어학 개론』에서 주장하는 '언어의 자의성'에 대해 읽어보면 조금은 이해가 될 수 있다. 페르낭 소쉬르 이전의 사람들은 유명론이라는 것을 믿었다. 유명론은 모든 것에는 마땅한 이름이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전통사상에서 아담이 세상에 이름을 지어준 것처럼 모든 것들은 합당한 이름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대상이 존재한 후 그것에 대한 이름이 붙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기를 낳고 그 아기에게 '김철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치자. 이 경우에 김철수는 그 아기이다. 우리는 아기를 김철수라 부른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언어는 실재를 반영하는 지시 물이고 이것은 문제가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소쉬르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그가 봤을 때 단어가 실재를 반영한다는 보장은 없다. 소쉬르는 언어는 자의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의적이란 말은 '자기 마음대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름은 순전히 관습에 따라 붙여지고 약속되는 것일 뿐 사물과의 도상적 유사성이라든가 지표적 인과성 등 어떠한 자연적 관계에 의해 객관적으로 붙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김철수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 아기가 김철수처럼 생겼기 때문에 지은 것인가? (김철수처럼 생긴 애가 세상에 존재하나?) 그렇지 않다. 다만 그렇게 부르고 싶어서 불렀을 뿐이다. 그렇게 이름을 짓고 나면 사람들은 그 존재에 대해 김철수라고 부른다. 결국 김철수라는 이름은 김철수의 부모가 지은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김철수 입장에서는 김철수가 되고 싶은가, 아닌가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도 없이 김철수가 된 것이다. 김철수라는 이름은 존재가 어떤 빛깔과 향기를 가지고 있는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게다가 만약 그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때, 부모가 '나는 나중에 아기를 낳으면 김철수라고 이름을 지어야지'라고 생각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김철수라는 이름은 아기의 존재에 앞선다. 마치 아이언맨이나 헐크라는 명사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 아닌 것처럼, 언어는 사물의 존재에 앞선다. 


나는 어떻게 사고하는가?


소쉬르에 의해 '언어는 사물의 존재를 사고하기 위한 매개다'라는 기존의 생각은 전복된다. 즉 언어는 사고를 구성하는 형식이 아니라 '사고 그 자체'가 된다. 이에 대해 소쉬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상이 관점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점이 대상을 창조'하며, 문제 된 사실을 고려하는 이런 방식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다른 것들보다 우선하거나 우월하다는 것을 사전에 알 수도 없다." 사실상, 소쉬르는 언어 이전의 인간의 사고를 과감하게 부정한다. 이제 언어는 단순히 어떠한 대상의 재현을 넘어선다. 언어는 그 자체로 사고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언어는 사회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게 되고, 우리는 그 단어가 정말 대상과의 연관성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관심 없이 그 단어를 사용한다. 마치 그 단어가 진짜 대상의 실재인 것처럼 말이다. 단어들이 모인 문장은 당신의 정신을 지배한다. 우리가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근대로 들어서며 당연하다는 것, 마땅한 것은 합리적이라고 불렸다. 이 합리적인 결론은 개인에 의해 도출되지 않는다. 사회와 집단의 습관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했다. 문제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당연하다는 그 문장이 대상에 대해 어떠한 관조의 과정 없이 관습에 의해 집단의 동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당신이 당연하다고 믿는 사회, 나이에 맞는 역할, 직업의 귀천, 사람의 외모, 자본의 유무 등등은 어떻게 도출된 것인가? 혹시나 그 기준으로 사람이라는 대상들 또한 겪어보지도 않고 그가 가지고 있는 조건과 관습에 의해 판단하지는 않는가? 


르네 마그리트의 단어 사용


이러한 문제가 대두되면서 예술가들 또한 대상을 습관화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잘못될 수 있음을 인지한다.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대상을 어떻게 부르느냐 즉 대상의 이름과 결부된다. 아무 연관 없이 언어를 받아들이고, 습관화하는 것은 대상을 대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마그리트는 자신의 회화에서 습관적인 언어들을 파괴하고 이에서 오는 낯선 두려움을 통해 관람자로 하여금 당연하지 않은, 불편한, 그렇지만 깊고 편견 없이 대상에 다가가는 사고를 요구한다. 

 이성에 의하여 확인되었기 때문에 분명하게 진실이라 여겨진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이며, 현실의 역설적 본질인 양면적 가치를 참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마그리트의 회화 작품에서 모든 것은 의식적으로 특정한 위기를 향하여 나아가고 이것을 통해 상식 세계의 제한된 증언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수지 개블릭,『르네 마그리트』,2000, 130p

   

자 멀리까지 왔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안에서 언어의 파괴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이제 작품들을 통해 한 번 알아볼 시간이다. 



* 르네 마그리트 전시 함께 관람해요


안녕하세요. 염호근입니다.

제 브런치를 자주 찾아주시는 분들 중 전시회에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기 싫으신 분들이나, 관람 후에 드는 생각을 나누고 싶은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이런 분들과 르네 마그리트 전시를 함께 관람하고자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선착순으로 4분 선정해서 같이 전시회 관람하고, 식사 후 관람 후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4분 선정이 안되면... 저 혼자 가겠습니다 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 신청 URL을 통해 신청해주세요~^^


일시: 6월 20일 토요일, 오전 11-15시 (식사 포함)

장소: 인사 센트럴 뮤지엄, 안녕 인사동 B1

가격: 개인부담 (관람료 13,000원 + 식사 + 차)

티켓 구매처: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20003657 

                      (확정되면 안내 메시지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때 구입하시면 됩니다 ^^)

일정: 11:00 ~ 13:00 - 전시 관람

         13:00 ~ 15:00 - 식사 및 관람 후기 나눔

1) 당신에게 충분한 돈이 있다면 이번 전시에서 어떤 그림을 구매하고 싶었나요?

2)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신청: https://forms.gle/mjmpXGvoeihFJnkq6

매거진의 이전글 르네 마그리트는 왜 저렇게 그렸을까?-2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