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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Oct 18. 2015

왜 윤두서는 자화상을 그리다 말았을까?- 전반부

윤두서, 조선시대, 공재윤두서, 녹우당

관상 포스터 


2013년 관상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친구와 길을 걷던 중 나는 벽에 붙은 관상 포스터를 발견했다.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구도인데? 카메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송강호의 눈과 삐죽삐죽 하늘을 향해 뻗쳐있는 수염은 윤두서의 자화상과 꼭 닮아 있었다. 조선시대 인물화 중 으뜸으로 꼽히는 윤두서의 자화상. 이 그림을 알게 된 것은 『오주석의 한국의 美(미)특강』이라는 책으로 부터이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그러한데, 이 글을 쓰기 위하여 다시 읽어 본 그 책에서 나는 윤두서의 그림에 대한 언급도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은 기억을 원하는 대로 편집한다. 한국화에 대한 재미를 오주석의 책을 통하여 나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윤두서의 그림을 오주석의 책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같이 포스터를 보던 친구에게 “이거 윤두서의 그림을 모티프로 만든  포스터야.”라고 말했다. 나의 지적 허영심을 마음껏 드러내고 싶었다. 

“그게 누구인데?” 

“조선시대 6대 화가 공재 윤두서 몰라?”

나는 재빨리 핸드폰으로 윤두서 자화상을 검색했다.

 “자 이게 윤두서의 자화상이야.”

 ”오, 본 적 있어. 이거 처음엔 도깨비 그림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 그림은 왜 그리다 말았어? 얼굴만 있고 귀도 없고 목도 없네.”


윤두서의 그림을 실제로 보다.


나는 서른이 다 되어 군에 입대했다. (나는 아직 전역을 못했다.) 돌이켜보면 전두엽이 아직 미성숙한 어린 동생들과 함께 하는 군생활은 그다지 즐겁진 않았다. 군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에 나는 동화되지는 않되 그렇다고 고립되지 않는 선에서 참여하곤 했다. 그러던 중 정말 감사히 참여한 프로그램이 있으니 그것은 2014년 10월에 있었던 정신교육이다. 게시된 스케줄표를 보던 나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정신교육 마지막 날 광주에서 열리는 ‘공재 윤두서 展(전)’에 참여하는 순서가 있었다. 공재의 그림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광주에서 있었던 윤두서展 포스터


윤두서가 그린 대부분의 그림은 그의 아들 윤덕희가 엮은 『윤씨 가보』에 실려있다. 이 책은 대대로 해남 윤씨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이외에 책에 들어가지 않은 그림들마저도 대부분이 해남 윤씨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 덕분에 그들이 전시회를 기획하지 않으면 윤두서의 그림은 관람할 수가 없다. 엄청난 행운으로 2014년은 윤두서 서거 300주기가 되는 해였다. 해남 윤씨 가문은 광주 국립박물관을 통하여‘공재 윤두서展’을 열게 되었다. 하필이면 2014년에 광주에서 군복무를 하는 바람에 나는 윤두서의 그림을 직접 볼 수 있었다.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모나리자를 보는 것만큼 가치 있었다. 윤두서의 그림을 보았을 때, 그 감동 앞에 내 언어는 힘을 잃는다. 나는 한참을 멍하니 그림을 감상했다. 그 벅찬 감동을 표현하기에는 내 단어가 너무 짧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한참 감동하는 내 옆에서 전두엽에 ㅈ자가 아직 새겨지지 않은 22살 동기 녀석이 말했다.

“형 근데, 왜 이 그림은 그리다 말았대?”

“아니야, 아니야, 이거 다 그린 그림이라고!!”



완성 되어진 그림


이 그림을 누군가에게 소개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그리다 말았냐고 되묻는다. 윤두서의 자화상은 사실 얼굴과 귀 목, 그리고 몸통 부분까지 완벽하게 그려진 그림이다. 이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처음 이 그림이 해남윤씨가문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을 때 당연히 미술학자들은 보여지는 그대로 그려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술학자들은 곧 지조 높은 사대부 가문의 장손인 윤두서가 귀도 없고, 몸통도 없는 파격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 의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자료를 수집한다. 그 결과 윤두서의 그림은 '그리다 만 그림이 아닌 완성된 그림'임을 밝혀낸다.

그 증거는 다음과 같다. 미술사가 오주선은 96년 사진(좌)은 일본 총독부가 발행한「조선사료집진속」에 실린 윤두서의 자화상을 세간에 소개한다. 사진속 그림에는 원본보다 더 세밀한 묘사와 더불어 윤두서의 몸이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숯으로 그려진 이 그림이 표구 과정(그림의 뒤에 천이나 종이 따위를 대고, 액자를 씌우는 작업)에서 유실되어져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사료집진속 윤두서의 자화상, 원본, 적외선 촬영을 통해 본 윤두서의 자화상 (왼쪽부터)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그림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보존과학실 연구팀은 용산 박물관 개관 특별전을 위해 윤씨 종가에서 빌려온 액자 형태의 윤두서 자화상을 적외선 촬영과 현미경으로 확대조사 했다. 적외선 투시 분석 결과 눈으로 보기 힘든 상체의 옷깃과 도포의 옷 주름 선의 표현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미경으로 자화상 얼굴을 확대해 본 결과 화가가 생략한 것으로 알려져온 양쪽 귀또한 왜소하지만 붉은 선으로 그린 사실도 밝혀졌다. 

그렇다. 윤두서 자화상은 이미 완성되어진 그림이었다.


후반부(클릭)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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