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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Oct 26. 2020

서른다섯에 하는 백패킹은 하나도 안 힘들 줄 알았다.

아픈 건 아픈 거다.

스무 살에 나는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갔다. 제도권 교육에 찌들어 있던 나에게 워킹홀리데이는 굉장한 도전이었고, 그 도전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숙하고 어린 나의 여행은 15kg의 배낭 하나와 단 돈 24만 원을 들고 갈 정도로 무모했다. 부족한 자금과 영어로 인해 숙소를 잡지 못했다. 덕분에 일주일 동안 해변 길을 따라 걸으며, 보이는 벤치에서 노숙을 했다. 당시에는 배낭을 어떻게 메는지도 모르고 평소에 운동을 한 것도 아니어서 배낭을 메고 걷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매일 어깨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고, 밖에서 느끼는 새벽 공기는 너무 추웠다. 물론 지나고 보니 정말 소중한 추억이고, 나를 성장하게 해 준 경험이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다음번에 배낭을 메고 여행을 온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잘 준비해서 이 고생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지난달에 친구 한 명이 배낭 하나만 메고 제주도에 다녀왔다. 백패킹을 다녀온 것이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경험을 하는 그의 사진을 보니, 한 동안 잊은 채로 다시는 안 하게 될 것 같던 백패킹 여행을 나도 하고 싶어 졌다.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아마도 스무 살 때의 좋았던 감정과 행복했던 추억이 떠올랐나 보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모하지 않게 조금은 덜 힘들게 백패킹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자료를 많이 찾아봤다. 어떤 장비들을 사용해야 하고, 배낭은 어떻게 메야하고, 어떻게 해야 따뜻하게 잘 수 있고 등등. 스무 살 때의 고통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자유함, 행복함, 자연과 하나 되는 황홀감을 느끼고 싶었다. 준비도 철저히 했다. 짐을 최대한으로 경량화했고, 좋은 배낭을 사고 메는 법도 익혔다. 체력도 길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등산도 하고, 헬스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백패킹은 자신이 있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짐을 챙겨서 버스에 올랐다. 준비를 잘한 덕분에 예전처럼 어깨가 끊어질 듯한 고통은 느끼지 않았다.   허리에 무게를 나눠지는 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텐트와 침낭도 잘 챙겼으니 잠도 따뜻하게 잘 것이다. 그렇게 다시 버스에서 내렸는데, 가방이 무겁다. 어? 왜 이러지 아까까지 아무 문제없었는데. 산을 오르기 시작하니 허리와 어깨가 같이 아프다. 그냥 가볍게 등산할 때와는 차이가 난다. 계속해서 산을 오르다 보니 다리도 아프다. 어깨도 끊어질 것 같다. 준비 잘했는데... 아픈 건 아픈 건가 보다.

그러고 보니 연애도 비슷한가 보다. 풋내 나던 스무 살에 마냥 행복하기만 한 그 감정에 휩싸여 연애를 시작했다. 미숙하고 준비가 안 되었기에 결국 무모하게 아픔을 갖고 연애는 끝났다. 시간이 지나며 꽤 많이 연애도 하고 여러 가지 준비도 하고, 그러다가 장시간 연애를 쉬었다. 다시는 안 생길 것 같던 감정이 올라온다.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경험도 있으니  거절당하더라도 아프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때처럼 다시 아프다. 안 아플 줄 알았는데 아픈 건 아픈 거다.


무사히 백패킹을 마치고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하산하고 집에 돌아오니 7시였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헬스장으로 향한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일상을 시작한다. 스무 살의 나는 백패킹 후 후유증이 길었지만, 서른다섯 살의 나는 후유증이 짧다. 어느 순간 회복하고 다시 일어나 걷는 법을 익혔다. 백패킹이든 연애든 아픈 건 아픈 건데, 아픈 건 아픈 거고, 이제는 그것들이 내 삶에 영향을 크게 주지 않는 나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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