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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Nov 25. 2020

앙리 마티스 회화계의 뉴노멀

야수파의 스타 앙리 마티스

1. 색의 상식, 야수주의

혹시 뉴 노멀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뉴 노멀은 경제, 사업 용어로 2007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가 계속되면서 이전에는 익숙지 않던 상황이 새로운 기준이 되었던 것에서 따온 단어이다. 코로나가 발생 이후, 이전에는 익숙하지 않던 것들이 새로운 기준이 되고, 그것이 일상이 되면서 이 뉴 노멀이라는 단어가 다시 쓰이게 되었다. 미술에도 뉴 노멀을 가져온 예술가들이 꽤 있다. 그중에서 앙리 마티스는 색을 쓰는 데에 있어 뉴 노멀을 가져온 화가이다. 야수파의 스타인 앙리 마티스의 전시화가 2020년 11월 1일부터 2021년 3월 3일까지 강남 섬유센터 지하 1층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오늘은 20세기 회화의 뉴 노멀을 가져온 화가 앙리 마티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자 가장 첫 번째 사진의 색을 무슨 색이라 하는가? 하늘색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다음 사진들 속 하늘은 무슨 색인가??


우리는 우리의 개념 안에 색을 제한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나무의 줄기는 갈색으로, 잎은 초록색으로 칠한다.

하지만, 어떤 나무는 하얀색의 줄기를 가지고 있고, 어떤 나뭇잎은 붉은색이나 노란색을 띠기도 한다. 오렌지는 오렌지 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가지 색의 오렌지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렌지 색'이라는 걸 만들어서 오렌지를 한 가지 색만 가진 것으로 제한한다.

이렇게 우리의 상식 안에 갇혀 있던 색을 해방시켜준 예술가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앙리 마티스이다. 앙리 마티스는 야수파의 대표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야수파라는 이름이 생긴 유래는 참 재미있다. 1905년 평소 서로의 화풍을 공유하고 함께 그림을 그리던 앙리 마티스, 앙드레 드렝, 블라맹크, 카무엥 망갱, 마르케 등의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들을 살롱도톤 전에 출품한다. 그들의 작품은 7번 방에 모여 있었다. 그들의 그림은 한결 같이 이전의 그림들이 보여주지 않던 과감한 색채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은 원시적인 고갱의 그림을 떠올리면서도 상식적인 색 조합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렇게 다소 폭력적인 그림들 사이에 어느 조각가의 아카데미 풍 대리석 작품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이 방에 들어온 유명한 평론가 루이 보셀은 그림들을 둘러보다 이것을 보자마자 “야수 사이에 도나텔로!”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앙리 마티스를 비롯한 독특한 색채를 사용하는 한 무리들이 20세기 초 미술 양식의 큰 획을 긋는 야수파로 불리게 된다.


2. 역사적 기록이 아닌 미술가의 철학

 

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앙리 마티스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최초의 작품은 바로 자신의 아내를 그린 <모자를 쓴 여인>이다. 이 그림은 살롱도톤 전에 출품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예술적 미가 도드라지는 그림이라는 평을 내릴 수 있겠지만 사실 이 그림은 실제 인물과는 전혀 비슷하지 않다. 일단 얼굴을 초록빛으로 그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마티스의 이후 그림은 더욱 기괴하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색들을 과감하게 사용한다.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실제의 어떤 사물이나 모델이 떠오른다기보다는 감정이 떠오른다.

마티스 이전 서양의 미술은 존재하는 것을 얼마나 그럴싸하게 그리느냐가 주된 주제였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중세,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에 이르러 존재의 본질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가 좋은 미술 작품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카메라가 발명되고, 역사를 기록해왔던 회화는 벽에 부딪히게 된다.  아무리 비슷하게 그려도, 카메라만큼 실제를 잘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앙리 마티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회화의 과제는 더 이상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는 그 이상을 기대해야 한다. 회화는 미술가가 자신의 내적 비전을 표현하는데 소용될 수 있는 것이다."


마티스는 그림을 통해 단순히 사물의 재현이 아닌, 미술가의 창조적인 내적 표현을 실현시킨 것이다.

앙리 마티스 이후로 미술가들은 색을 사용하는데 더 이상 제약을 받지 않는다.

점점 회화는 역사적 사건들의 기록보다는 미술가의 철학과 감정을 드러내는 예술이 되었다.

바로 '뉴 노멀'이 된 것이다.


"지나간 세대의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는 젊은 화가는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다."



3. 배움에 대한 열정과 부단함

앙리 마티스는 뉴 노멀을 어떻게 창조했을까? 그는 천재였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은 듯하다. 앙리 마티스는 수많은 스승들을 두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앙리 마티스 <후식>

이 그림은 그가 귀스타브 모로의 및에서 그림을 배우면서 카미유 피사로에게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전통회화적인 화풍을 가진 그가  자신보다 어린 앙드레 드렝과 블라멩크를 직접 찾아가 야수주의적 화풍을 배우기도 한다. 실력이 있다면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도 배움을 청할 수 있는 겸손함과 열정이 있었다. 그는 여행을 하거나, 투병 중에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고 연구했다. 그는 끊임 없는 배움에 대한 열정과 부단함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세계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뉴 노멀은 카메라의 발명, 금융 위기나 코로나 같은 커다란 사건 이후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작은 어떠한 사건일지라도 그 사건을 통해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것도 뉴 노멀일 것이고, 새로운 사상을 갖고 사는 것도 뉴 노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앙이 마티스가 보여준 것처럼 끊임없는 배움과 부단함을 통해 갖춰질 수 있다.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앙리 마티스의 그림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위의 글은 유튜브 영상으로도 시청이 가능합니다.

- 회화계의 뉴 노멀 앙리 마티스: https://youtu.be/OxpjcdDacjQ

- 데미안 허스트는 왜 상어를 포르말린에 담뒀을까?: https://youtu.be/agEFA-GKe_g

- 흑인 인권 운동의 영감, 장 미셸 바스키아: https://youtu.be/hktnMYpIQ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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