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김홍도, 황묘농접, 심사정
간송 미술관이라는 곳이 있다. 간송 전형필이라는 분이 있었다. 그 분은 일제시대 사람이다. 일제 시대에는 우리나라의 미술품들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못하였다. 일본은 우리 나라의 문화재들을 마구 약탈해갔다. 수많은 문화재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이를 너무 안타까워했던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간송 전형필이다. 간송은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우리 문화재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화각을 세우고 그 곳에 문화재들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그 곳이 간송 미술관이다.
간송의 노력 덕분에, 간송미술관은 수많은 우리나라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다. 미술관은 1971년부터 5월에 한번 10월에 한 번 일년에 두 번씩 무료개방을 했다. 1년 중 4주(5월에 보름, 10월에 보름)라는 짧은 전시기간과 엄청나게 높은 질의 문화재들 덕분에 간송미술관의 전시는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전시기간에는항상 관람객들이 100m가량의 줄을 섰다.
이 간송미술관이 DDP와 손을 잡고 2014년부터 간송문화전을 열기 시작했다. 미술관은 간송 문화재단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제 전시에는 돈을 내야 한다. 이전에도 돈을 냈어야만 할 정도로 가치 있던 전시기에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 이번이 벌써 5번째 문화전이다. 이번 문화전의 주제는 바로 화훼영모이다. 화훼(花卉)란 꽃과 풀을 뜻한다. 영모(翎毛)란 털 달린 새와 동물을 말한다. 화훼영모란 꽃과 풀, 날짐승과 길짐승 등 동식물들을 소재로 하는 그림을 말한다. 서울시 공식 관광정보에서 말하기를 선조들은 꽃과 새, 곤충과 물고기들도 자연의 일부임과 동시에 우주만물의 섭리가 합축된 존재로 인식하였다. 또한 동식물들을 통해 도덕적 이상과 더불어, 무병장수나 입신출세 등과 같은 현세적 욕망을 담아내곤 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는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알만한 고려말부터 조선후기 화가들의 화훼영모 그림들이 전시된다. 김홍도, 심사정, 신윤복, 신사임담, 장승업 등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 된다. 이 전시회를 놓칠수는 없었다. 마침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하고 취직하기 전까지의 시간이 조금 남아 DDP로 발걸음을 향했다.
간송문화전에 소개 된 작품들은 대만족이었다. 이렇게 질 좋은 그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김홍도, 신윤복, 심사정, 윤두서, 정선, 신사임당 등 이름만 대도 알 만한 작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림들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전시회에 가면 몇몇의 작품들이 가장 눈에 남기 마련이다.
처음으로 내 이목을 끈 것은 바로 조속의 <고매서작>이었다. 가지에 앉아있는 까치를 그린 작품이다. 굵은 두 붓의 놀림이 까치의 꼬리를 그려냈다. 그 두 붓놀림을 시작으로 까치가 그려진듯한 이 그림에서는 화가가 얼마나 붓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매화를 쳐낸 솜씨 또한 예사롭지 않은 이 그림은 명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우와~'하며 그림을 지나치는 순간. 입을 다물새도 없이 깜짝 놀라게 한 작품이 있었다. 그 그림은 바로 심사정의 <어약영일>이었다.
그림은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잉어의 모습을 그렸다. 이는 용이 될수 있는 문, 즉 '등용문'에 대한 소망을 그린 그림이다. 등용문이라 하면 나라의 관리가 되는 것이다. 잉어는 그 등용문을 향한 몸짓을 충실히 보여준다. 파도는 험하고 거칠어 잉어의 점프를 막는다. 전체적인 그림의 분위기에 압도 당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며 심사정의 그림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이 그림은 아쉽게도 중국의 화첩을 보고 따라 그린 것이라 한다. 하지만 심사정의 표현력은 단순히 회화를 넘어 분위기를 장악하는 능력이 있다.
그렇게 한참 심사정의 그림을 감상하다 다른 그림들을 보니 감동이 덜하였다. 나비를 엄청 잘 그린 그림도 있었고, 붓을 잘 놀린 그림들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심사정의 그림에 대한 감동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김홍도의 그림을 보는 순간 비로소 나는 심사정의 그림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전시회의 마지막 부분에 김홍도의 명작 <황묘농접>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회의 메인 작품이니만큼 따로 떨어져 전시되어 있었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미쳤군 미쳤어..'라며 감탄을 내뱉었다. 김홍도의 그림은 아름다웠다. 첫번째로는 색감이 황홀했다. 서양화처럼 모든 것을 색으로 채우지 않은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알맞게 빛이 바랜것도 한국화를 더욱 한국화처럼 보이게 했다. 두 번째로는 세밀한 묘사에 혀를 내둘렀다. 김홍도는 세밀한 표현에 뛰어나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서 소개 된 김홍도의 작품 <송하맹호도>를 크게 확대해보면 호랑이 털의 모습 하나하나까지 표현한 그의 세밀함을 엿 볼 수 있다.
이런 그의 세밀함이 <황묘농접도>에서도 나타난다. 고양이의 털과 근육하나까지도 포착한것 같은 모습, 나비의 날개, 그리고 꽃의 모습은 사진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나도 모르게 입을 떡하니 벌리고 한참을 김홍도의 그림 앞에 서있다.
간송재단의 그림들을 관람하는 것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영광이다. 굉장히 수준 높은 그림들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다. 그것은 아쉽게도 전시회에 소개된 작은 그림들이 관람하기에 너무나도 불편하다는 점이다. 큰 그림들은 벽에 걸어놓아 관람하기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작은 그림들은 허리 높이의 유리 케이스 안에 전시해 놓았다. 가까이서 보아야만 보이고 그림이 평면에 누여있기에 나같이 키가 작은 사람들은 까치발을 들고 그림의 90도 위치로 머리를 들어야 관람이 가능했다. 관람자의 시선을 조금 더 배려했다면 아주 훌륭한 전시가 되었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