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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Dec 10. 2015

김영하의 「읽다」, 그리고 꿈꾸다

김영하가 말하는 책. 

김영하의 에세이 시리즈 마지막 편이 발매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통닥통닥 했다. (쓰고나니 오타지만 그냥 냅둬야겠다.) 당장 서점에 달려가 책을 구입하고 싶었지만 회사 주변에는 서점이 없었다. '주말에 꼭 사자'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주말에 지나치게 아름다운것에 홀려 있었다. 어느날 항상 늦게 끝나던 회사가 왠일로 일찍 끝났다. 서점에 갔다. 그리고 김영하의 책부터 찾아 헤맸다. 그정도로 김영하라는 이름은 나에게 책을 구매하는 지표였다. 드디어 책을 샀다. 얼굴 가득 함박 웃음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뽐내기


김영하의 「읽다」는 작정하고 '독서'에 대해 쓴 책이다. 그는 2015년 5월에서 8월 사이 독서에 대한 6번의 강연을 했다. 이 강연에 쓰인 원고들을 엮은 책이 바로 「읽다」이다. 그는 책의 뒤편 작가의 말에서  '서사문학이라는 것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왔고, 독자이자 작가인 내가 어떤 지점에서 서 있는가를 살펴보자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말한다. 작가는 온갖 겸손한 말로 내가 과연 이런 강연을 할만한 자격이 되느니, 읽은책보다 읽을 책이 많다느니 자신을 감추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 책은 더할나위 없는 김영하 작가의 뽐냄이 실려있는 책이다. 작가는 독서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거침 없이 드러낸다. 그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문학의 한장면을 빌려오고 이를 해석한다. 이 해석을 하는 방식에서 작가는 충분한 근거를 들어 '어떠세요? 나의 생각이 옳지 않은가요?" 하고 묻는다. 그의 질문에는 우리는 "맞아요 당신이 옳아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는 맞는 말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독자이며 작가인 김영하가 얼마나 책에 대해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그 진지함은 충분히 공감하고 무릎을 탁 치며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 속에서 자신의 지식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작가가 얄밉기보다는 고마운 책이다. 


김영하가 말하는 책


김영하가 말하는 책은 위험하면서 위험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먼저 책은 위험하다. 책은 인간을 감염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며, 이성을 파괴할 수도 있다.(57p.)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돈 키호테'이다. 그는 기사들의 모험소설을 읽은 후로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하며 가난한 여인을 공주로 착각하고 자신이 기사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책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여 책이 자신의 현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로 책은 위험을 막아준다. 아무리 잘난 사람들일지라도 어떠한 부분에서 그들에게는 '무지'가 있다. 그리고 그 무지를 알지 못하는 '오만'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무지와 오만을 위기의 순간에서야 겨우 깨닫곤 한다. 경제적 요소, 정신적 요소, 관계적 요소가 무너졌을 때 우리는 무지와 오만을 발견한다. 독서는 커다란 위험 없이 무지와 오만을 발견하게 한다.  비극적상황을 책에 제시하고 이 일들을 통하여 교훈을 얻는다. 


이렇게 책의 역할들을 통하여 독자는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하여 나간다. 기존의 생각들을 뒤엎어버리기도 하고 더욱 굳건하게도 한다. 책을 읽는 것은 내 자신과 대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한테는 위험


김영하가 밝힌 책에 대한 두 가지 주장들은 상반된다. 앞서말한 책의 기능은 책을 모방하게 하고 책과 현실을 착각하게 한다. 하지만 두 번째는 책과는 다른 삶을 살게끔 한다.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개인적으로 책은 나에게 위험이다. 책은 나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이성을 파괴한다. 나는 책을 통해 꿈꾸는 것들을 현실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남들이 생각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일이 나에게는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책은 나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에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고 꿈꾸며 살아가게 만든다. 책을 읽을 때면 현실적 가치와 내가 생각하는 가치가 달라진다. 소비하는 기쁨보다는 창조하는 기쁨을 갖게 만든다. 물건을 구입하고, 좋은 옷으로 몸을 치장하고, 대접을 받는 것도 물론 기쁘다. 하지만 내가 만족하는 것은 지식을 습득하고, 관계를 넓히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내 인생은 남들보다 느리고, 철이 덜 들었다. 나는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며 살고, 좋은 그림을 볼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 즐겁게 이야기 할 수 있기에 내 삶을 행복하다 느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내 삶은 휘청휘청 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에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모습은 마치 풍차와 싸우다 머리가 터지고 사람들에게 놀림받고, 춥고 배고프고 가난한 돈 키호테처럼 보인다. 책이란 놈은 내게 위험이다. 착각하게 만드니 말이다. 돈 키호테는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별로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 내 가족이 불행한걸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책이 가끔은 밉다. 나도 내 행복을 가장해 내 가족을 불행하게 만들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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