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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Aug 02. 2015

프리다칼로 展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화가, 그것은 절망이었을까?

전시안내: http://www.kocis.go.kr/koreanet/view.do?seq=4011



프리다칼로, 디에고 리베라, 그리고 메르스


5월 휴가 중에 곧 소마미술관에서 프리다칼로의 전시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게다가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디에고 리베라의 전시도 열리고 있었다. 이 두 예술가의 그림을 같이 본다면 행복하겠다 싶었다. 6월 중에 꼭 두 전시회를 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메르스가 터졌다. 나의 휴가는 제한되었다.

6월이 되어 휴가를 나오자 마자, 소마 미술관부터 달려갔다. 프리다 칼로를 볼 수 있구나. 루브르에 전시 된 최초의 멕시코 화가. 멕시코 지폐에도 그려져 있는 인물 (멕시코의 신사임당이잖아..) 멕시코 정부의에 의해 보물로 지정이 되어진 모든 그림들 . 그 그림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의미가 있는 예술가냐고?  


심미적 의미


같은 생활관 동기가 휴가 나가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프리다칼로의 전시를 갈 거라고 했다.

 "전시회? 비싸지 않아?"

 "한 만오천원정도."

그러자 동기는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싸? 나는 미술 전시회는 한 5만원정도 하는 줄 알았지."

그리곤 한마디 덪붙였다.

"그런데 그게 누구야? 의미가 있는 미술가야?"

프리다칼로는 근대 멕시코 초현실주의 화가이며, 페미니스트들의 우상인 존재이다. 그는 멕시코 내에서도 엄청난 인기가 있어 지폐에도 등장할 정도이다. 초현실주의 거장 앙드레 브르통은 그녀의 예술에 대해 "폭탄을 두른 리본"이라고 언급했다. ('예술가의 탄생',유경희,2003) 그녀의 자화상 속에 드러난 폭탄과 같은 표현기법은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스토리


프리다 칼로에 대한 이야기 영상: https://youtu.be/eFHGgQQBdrY

하지만, 프리다칼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녀의 기구한 삶이다. 그녀는 신체적으로, 그리고 사랑에 있어 굉장한 아픔을 겪은 화가이다. 먼저 그녀는 신체적 결함이 컸다. 그녀는 어릴적 소아마비로 인하여 한쪽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렇게 절름발이로 살다가 열여덟살에는 교통사고가 나 철봉이 배를 관통하여 질로 빠져나오는 끔찍한 부상을 당했다. 병상에 누워 있을때 그녀는 아마도 '왜 내게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까? 도대체 나는 무엇일까? 하며 고민하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거울을 가져다 놓고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다. 프리다칼로에게 미술은 의미전달도, 아름다움의 표현도 아니다. 그녀에게 미술은 그녀가 존재하는 증거이며 그녀 자체이다. 그 때문인지 프리다 칼로 당신은 스스로를 초현실주의자 화가라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 현실만을 담아낸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그녀는 사랑에 실패한 여자였다. 그녀는 디에고리베라라는 멕시코의 거장 화가를 사랑하였다. 하지만 디에고리베라는 희대의 난봉꾼이었다. 그는 수많은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고, 심지어 프리다칼로의 친동생과도 섹스를 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뮤즈이지만 가질수 없는 존재인 디에고리베라이기에 그녀는 그와 이혼하고 다른 남자들을 사귀고 동성애도 한다. 그렇게 그녀는 항상 사랑에 굶주려있었다. 또한 그녀는 세번의 유산으로 인하여 출산에 목말랐던 여자이다.


이러한 기구한 삶과 스토리들은 그녀를 기억에 남는 화가로 만들었다. 아무래도 스토리텔링이 있으면 더 기억하기 쉬우니까. 그녀는 지옥과 같은 삶을 폭탄과 같은 표현기법과 함께 예술로 승화시킨 점에서 예술적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여성성이 이미 증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던 모습은 (물론 사회주의자인 디에고리베라 때문이었겠지만)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영감을 줬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녀는 충분히 감상하고 관찰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화가이다.


아니야 그녀는 행복했어.


루이스 마틴 로자노의 의한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관계

 : https://youtu.be/9hmPGGnQ-nA


그동안 프리다 칼로의 그림의 원천은 자신의 신체적, 정서적 아픔에 대한 철저한 복사였다고 알고 있다. 비극적인 삶인 그녀의 그림을 완성 시킨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주장이 등장한다. 예술사가이자 멕시코 시티의 이베로 아메리칸 대학의 교수인 루이스 마틴 로자노는 "프리다 칼로는 행복했다" 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예술을 하는 내내 디에고 리베라와의 관계가 이상적이었으며 그 삶을 즐겼다고 주장한다. 이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 (프리다 칼로가 큰 사고를 당하고, 이혼을 했으며, 여러 남자와 사랑을 나눈것은 팩트이다.) 어떻게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루이스 마틴 로자노에 의하면 그녀(칼로)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디에고 리베라와 칼로의 관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일반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디에고 리베라는 일찍이 유럽으로 유학을 가며 미술적 기법 뿐 아니라, 아방가르드 시대의 철학을 공부하게 된다. 이전 시대의 정형화 된 모든 것을 거부하며 큐비즘 작가가 되기도 했던 리베라는 성적 취향과 삶에서도 사회가 요구하는 남편과 아내상을 철저히 거부한다. 그렇기에 그는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 자신의 사랑을 가두지 않았으며 이를 프리다 칼로에게까지 강요했다. 프리다 칼로는 절실히 디에고 리베라를 존경했다. 그녀는 그의 사상을 공유했으며 (심지어 동성애까지도) 이것이 그녀에게는 행복이었다는 것이다. 성적 취향은 디에고 리베라와의 관계에서는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 루이스의 주장이다.

그녀의 그림을 보고도?


하지만 그녀의 그림을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녀는 철저히 고통 받았던 존재이다. 그녀는 리베라의 사랑을 받지 못함을 애석해 하며 자신의 듀얼리즘 (리베라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피동적 존재와; 리베라가 좋아하는 멕시코 의상과 긴 머리, 화가로서의 자신; 유러피안 옷을 입고 머리를 말아올린)을 작품으로 남겼다. 피투성이가 된 여인을 안아주지 않고 피 묻은 칼을 들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남성의 모습을 등장시켜 당신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를 표현했다. 화살을 피하려고 발버둥 치며 나무 가지를 부러뜨린다. 하지만 화살은 고스란히 사슴의 몸에 꽂혔고, 사슴은 피를 뚝뚝 흘리게 된다. 특히나 프리다칼로는 세 번의 유산 경험 가운데 그녀가 느낀 감정을 끔찍해 보이도록 고스란히 그림에 옮기기도 했다.



그림만 보았을 때 분명히 프리다 칼로는 고통을 받았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그 동안 이러한 주장들이 대세를 이룬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루이스가 프리다 칼로가 행복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프리다 칼로가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 있었기에 그림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점 (그는 프리다 칼로가 유산했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미술계로써는 다행이라 말한다) 그리고 끝까지 프리다 칼로의 곁을 지켜준 디에고 리베라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그정도 했으면 헤어질만도 한데, 디에고 리베라는 어찌 되었든간에 프리다 칼로의 말년을 함께 한다.)



애석한 전시


이러한 배경 스토리를 알고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접하면 그녀의 그림에 담긴 메시지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 그 재미는 찾다가 말아버린 느낌이다. 이번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리다칼로전은 베르겔재단의 컬렉션을 위주로 한다. 디에고리베라와 프리다칼로가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인 나타샤 겔만(그녀의 초상화만 8개가 있더라)과 그녀의 남편이 수집한 작품들이 이번에 전시된다. 애석하게도 문제는 개인의 수집품들이기에 다양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프리다칼로하면 지옥과 같은 자신의 삶을 표현한 작품들이 많은데, 이번 전시에 그런 폭탄같은 그림들은 별로 없다. 반가운 소식은 디에고리베라를 비롯한 몇몇 멕시코 화가들의 그림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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