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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Nov 18. 2022

톨스토이의 사자와 소

인간관계에 대한 동화

톨스토이가 쓴 짧은 동화 중에 사자와 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사자와 소는 서로를 사랑했다. 둘은 결혼을 한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상대방에게 주고 싶은 것들을 준비해서 대접한다. 소는 사자에게 맛있는 풀을 준비한다. 사자는 소를 사랑했기에 못 먹는 풀을 먹었다. 사자도 소를 위해 신선한 고기를 준비한다. 소도 사자를 사랑해서 못 먹지만 그 고기를 꾸역꾸역 먹었다. 하지만 참을성에는 한계가 있는 법. 그들은 크게 싸우고 헤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나는 최선을 다했어'라고 말한다. 관계를 맺을 때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동화다.


그런데  이야기에 대해, 아무리 사자가 입장에서 생각해도 둘은 결국 이루어질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자가 100% 소의 입장에서 생각할  있을까? 그렇지 기 때문이다. 사자가 (마치 농부가 소에게 그렇게 하듯이) 소의 균형 잡힌 영양을 위해 여러 종류의 풀을 준비했다고 쳐보자. 소는 처음에는 자신의 건강까지 생각하는 사자에게 감동해서 평소에  먹던 풀도 먹었을 것이다. 사자는 신이 나서  건강해지는 여러 풀들을 준비한다. 그것이 소를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는 이내, 사자가 주는 풀들에 흥미가 떨어진다. 그것들은 소의 입맛이 아니다. 사자가 생각하는 '소의 건강에 좋을  ' 일뿐이다. 사자는 소의 입맛을 알 수 없었. 사자가 가져오는 풀들은 소에게든 너무 맛이 없다.  이상  풀들은 소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소는 사자가 자신과 다른 동물이기에 자신을 100%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는 사자가 가져오는 풀을 먹을 때마다 외로움을 느낀다.  


결국 소는 사자에게 네가 가져오는 풀들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고 말한다. 나를 위해 가져오는 풀들은 나를 외롭게 만든다고 말한다. 너의 방식이 틀린 것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다. 그저  사자이기에 소인 나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한다.


사자는 충격을 받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은 소가 아닌 사자이기에, 소를 행복하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소의 인생에 사자가 사실 무슨 필요이겠는가. 사자는  이상 자신의 방법대로 소를 사랑하는 것은 소에게는 불행이라는 것을 알고 이별을 받아들인다. 사자는 소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도 소를 완벽히 이해할  없다.


그러니 애초에 각자가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동화를 사람 간의 관계에 적용하는 것이 나는  이해가  된다. 애초에 사자와 소가 사랑을  일이 있겠는가? 인간 간의 관계는 소와 소가, 사자와 사자가 사랑하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럼 소와 소가 만나고, 사자와 사자가 만나면 갈등은 일어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와 소가 만나도 갈등은 일어나고, 사자와 사자가 만나도 갈등은 일어난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도 갈등은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문제는 상대방은 사자이고, 나는 소이기에 아무리 노력한들 그 갈등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사자가 되는 순간,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소에게 행복을 줄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사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밤마다 오열하며, 그저 소를 행복하게 해 줄 소를 만나길 빌어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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