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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Feb 14. 2016

내 목소리를 들으셨도다

2016.2.7 설교, 시편 6편


응팔에서 정봉이는 치토스를 사먹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사실 치토스보다는 '한 봉지 더'인듯 싶다. 하지만 그는 꽝을 더 많이 뽑는다. 그럼에도 그는 또 치토스를 산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 뒤에 붙은' 다음 기회에'라는 문구에 담긴 희망 때문인듯 싶다. 살면서 누구든지 '꽝'을 한 번씩은 뽑아본다. 그냥 꽝이 되면 실망하고 좌절하지만, '다음 기회에'라는 이 문구가 다음번에는 잘 될거라는 희망을 준다. 


우리의 인생도 '다음 기회'가 있다. 오늘 잘못되면 내일부터 잘하면 되고, 이번주가 잘못되면 다음주에 잘하고, 이번 달이 잘못되면 다음 달에 잘하면 된다. 우리는 분명히 이번 해가 끝이 나면 다음 해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 번 더'라는 것은 굉장한 선물이다. 만일 우리 인생에 '한 번 더'가 없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 삶은 칼날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위태한 삶일 것이다. 오늘이 잘못되면 내 인생 전체가 날라가는 상황이 온다. 

그렇다면 삶은 어떠한가? 우리의 삶은 '내세'가 과연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있다면 '내세'는 내일, 내년처럼 공짜로 주어지는 것일까?


오늘 본문은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지를 밝히면서 시작이 된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이니이까


성경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고 묘사된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왕이었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였다. 그런 다윗이 오늘 뼈가 떨릴 정도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는 배경적 지식으로 아마도 이 시는 다윗이 밧세바 사건 때 하나님 앞에 참회하는 시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 당시 상황과 다윗의 신앙으로 말미암아 이것은 커다란 죄였고, 다윗은 이에 하나님이 자신을 진노로 징계할까 뼈가 떨릴정도로 두려워 하고 있다. 그는 죄를 지은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했고 이를 심판하실 하나님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다윗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일까? 우리가 다윗만큼의 커다란 죄를 저지르지 않아서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죄가 너무 많다. 너무 많기에 그것이 담론화 되지 않는다. 죄악이 만연하다. 그렇기에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쉽게 거짓 증언하고, 말로 사람을 죽이고, 음란하다. 그러면서도 '세상보다는 우리는 낫지'라며 자위한다. 어느 순간부터 교회에 오는 것은 이번 주에 죄를 짓기 위한 포석이 된다. 한주 동안 죄를 짓고, 교회에 와서 회개한다. 이 회개에 대한 위안을 받고 가벼운 마음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나아간다. 그리고 다시 죄를 짓는다. 그리고 교회에 와서 다시 회개한다. 이것이 지금 청년들의 현실이다.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참회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준을 세상의 윤리 도덕에 잡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읽으면 읽을 수록 우리가 죄가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죄가 얼마나 커다란지를 알고 다윗처럼 눈물로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에는 죄를 지었지만 다윗과는 다르게 하나님 앞에서 도망하고 피한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아담이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직후, 그는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다. 그 때에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고 아담은 자신이 숨었다고 이야기 한다. 이에 반해 다윗은 울면서 하나님을 대면했다. 우리도 아담처럼 죄를 짓고 하나님을 피할때가 많다. 남들에게 들키면 괴로운 죄들이 있어 고백하지 못한다. 


내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내 영혼이 올바르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영혼이 죽고 즐겁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소통이 되는 관계가 되려면 영을 회복해야 한다. 그 영의 회복은 회개와 참회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절실히 원한다면 아담처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처럼 죄를 들여다보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하며 죄의 무게를 느껴봐야 한다. 죄에 대해서는 도망가지 말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와 기도를 받으시며 우리에게 새로 시작하는 복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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