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문화전 6부 풍속 인물화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간송 미술관은 이전에는 1년에 딱 두 번만 그것도 며칠 동안만 전시를 했었다. 그런 간송 미술관이 DDP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전시회를 하게 된 것이다. 원하는 시간에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무언가 내가 어렵게 어렵게 손꼽아 기다리고 몰래 보던 작품을 모든 사람들이 쉽게 접해 버린다는 알량한 문화 특권적 생각도 들었다. 마치 나만 알던 인디밴드가 무한도전에 출연해서 갑작스럽게 유명해진 느낌이랄까? 어찌 되었든 시간을 내서 가 볼만한 전시이기에 나는 DDP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일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대문은 인산인해였다. 지하 2층에서는 현대카드에서 주최하는 장폴 고티에의 전시가 이뤄지고 있었다. 나는 사실 패션에 관심이 거의 없는지라 흥미가 가지 않았다.
좋아하는 서양화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답을 내놓는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라던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의 풍경화 또는 초상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한국화를 떠올리면 대부분은 김홍도의 씨름이나, 서당, 추수 타작 같은 풍속 인물화를 떠올린다. 이전 전시처럼 화훼 영묘의 그림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점도 있지만, 풍속 인물화는 우리나라의 그림을 대표하고 많은 사람들이 즐겼던 그림의 장르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다른 전시보다도 아는 그림이 많고, 굳이 해석을 하지 않아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전시이다.
몇몇 한국 풍속 인물화의 특징은 썩 잘 그리지 않은 그림이라는 점이다. 민화이기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당시의 화풍이 그래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물의 신체 비율이 깨져 있고, 원근법을 무시하기도 한다. (폴 세잔처럼..) 특히나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다. 오히려 인물들의 표정이나 장면의 분위기를 강조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그림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분위기나 색감, 그리고 특이한 구도들은 그림을 단순히 못 그렸다고 치부할 수 없는 그림들이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은 김득신의 그림들이다. 김득신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그리 잘 그리지는 않은 그림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전체로 보면 상당히 잘 그렸다고 느껴지게 만든다.
그렇다고 한국 풍속 인물화를 단순히 어떠한 한 범주에 집어넣을 수는 없다. 어떠한 그림들은 지독하게 잘 그린 그림들도 존재하고, 어떠한 그림들은 한편의 만화 삽화를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정선의 그린인 <송암 복호>는 표정이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고, 선이 분명하며, 색채가 선명하다. 이것은 분명 김홍도나 김득신의 그림과는 다른 분위기를 낸다. 그러면서 호랑이의 꼬리가 소나무 뒤로 가는 파격적인 원근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자칫 품격이 낮은 그림처럼 보일 수 있으나, 강조점을 정확히 잡아서인지 묘하게 안정되어 있다.
윤두서의 그림인 <의암 관월>은 그림에 파격적인 여백을 넣는다. 자칫 잘못하면 그리다 만 것 같은 그림이 될 수도 있지만(특히나 컴퓨터로 보면 더더욱) 실제로 그림을 접하면 이 그림은 완벽한 계산과 계획에 의하여 그려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의 여백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조금의 아쉬움이 없다.
이번 풍속 인물화전을 관람하며 느낀 것은 '한국화의 특징이 무엇이다'라고 정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한국화는 화가에 따라 그 풍이 너무나도 다르게 보인다. 먹의 놀림이나 분위기 구도들도 다양해서 한 가지의 특징을 잡아내기 힘들다. 이전에 갖고 있던 한국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다양한 그림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간송 미술전은 굉장한 의의를 갖고 있다.
간송문화전 5부 "화훼 영묘"의 메인이 단원이라면 "풍속 인물화"의 메인은 혜원이다. 풍속 인물화전에는 3원 3재(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공재 윤두서)의 그림이 모두 전시되어 있다. 이들의 이름에 걸맞게 뛰어난 그림들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나 김홍도의 <마상청앵>이나 장승업의 <꿈>은 그들의 뛰어남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렇게 뛰어난 그림들에도 불구하고 메인은 단연코 혜원 신윤복이다. 이미 <단오풍정>이나, <미인도>등으로 일반 대중들에게도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신윤복의 그림은 실제로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특히 <미인도>를 가까이서 관찰하면 그가 얼마나 섬세하게 대상을 표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미인도의 머리털 한올 한올을 그려내고 채색했다. 실제로 그 그림을 보면 마치, 그림에 머리카락을 붙여놓은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 부분은 컴퓨터로 절대로 표현이 안되니 꼭 직관해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신윤복의 그림 중에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바로 <쌍검대무>이다. 대부분의 한국화가 정적인 느낌을 주는데 반하여 이 그림은 굉장한 동적 느낌과 속도감을 전해준다. 그림의 중앙에서 검무를 추는 기생의 모습은 짧은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관람객들의 표정을 관찰하고 훌륭하게 그려낸 화가의 세심함에 감탄하게 되는 그림이다.
신윤복의 그림은 매우 뛰어났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풍속 인물화전에서 하나의 그림을 꼽으라 하면 이인문의 <목양취소>를 꼽겠다. 신윤복의 그림이 이미 많이 알려진 까닭도 있겠지만, 이인문의 그림은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그림은 실제로 보면 조금 더 초록빛이 더 돈다. 피리를 부는 소년 뒤로 나있는 버드나무가 더 진하고, 앞쪽에 위치한 양의 명암이 중요시되어 있다. 절제하면서도 여백의 미도 있고, 양과 버드나무를 강조함으로써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한국화답게 섬세한 표현들이 담겨 있어 입을 벌리고 구경했다. 이 그림만은 반드시 직접 가서 관람하면 좋을 듯하다.
간송 문화전은 불편하다. 벽에 거는 족자나 커다란 병풍 그림을 제외하고는 모두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70cm인 내 허벅지쯤에 위치하고 있어, 이것을 보려면 나조차도 고개를 숙여야 한다. 나보다 큰 키의 사람들이 관람을 온다면 아마도 더욱 불편할 것이다. 게다가 모든 그림들은 유리관 안에 담겨 있다. 물론, 그림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겠지만, 유리에 비친 내 옷 때문에 그림이 잘 안보이기 일쑤이다. 차라리 비치지 않는 소재를 덮개로 사용했다면 하는 마음이 든다. 이러한 불편함들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방문한다면 관람료가 아깝지 않은 전시회라 확신한다.
일시: 2016.04.20 ~ 2016.08.28
장소: DDP 디자인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