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연애소설, 낭만주의 연
스무 살 무렵 첫 번째 사랑을 끝냈다. 미숙하기에 겁 없이 사랑했고, 뜨겁게 사랑했다. 무엇을 남길까? 무엇을 줄까? 고민 없이 모두 다 주었다. 그렇기에 사랑을 끝냈을 때 나의 마음은 너무나도 허전했다. 그때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었다.
작가는 사랑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사람들의 심리 묘사를 글로 표현했다. 내 언어가 힘을 잃은 수많은 두근거림과 사랑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을 모두 글로 표현하는 그의 책을 읽으면 그의 표현력에 경탄했다. 그리고 그의 책처럼 깊게 생각하며 사랑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고 한참 사랑을 하지 못했다.
한참을 뛰지 않던 심장이 하와이 어학연수 기간에 뛰었다. 함께 어학연수를 같이 갔던 여학생에게 나는 마음을 뺏겼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낯선 분위기에서 생겨버린 즉흥적 감정인지 사랑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었다. 애매모호한 심장의 두근거림이 어떤 감정이었는지를 확실하게 알게 해 준 책이었다.
그 이후로 누군가 사랑을 시작할 때, 상대방과 서로 사랑을 할 때, 그리고 사랑을 끝냈을 때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을 권한다. 그가 느끼는 감정들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상대방에게 자신에게 화내며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알게 해주며, 그의 이별이 모두가 겪는 삶의 과정임을 위로해주기 위해서였다.
한참 동안 나오지 않던 알랭 드 보통의 연애 소설이 오랜만에 발표되었다. 그것이 바로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삶」이다. 그는 연애소설로 굉장히 유명하지만 그의 전공 분야는 철학이다. 그는 연애소설보다 오히려 철학책들을 더 많이 집필했다.「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불안」, 「일의 기쁨과 슬픔」등은 그의 지식을 충분히 드러내는 대표작들이다.
그렇기에 그의 연애 소설은 단순히 러브 스토리를 구성하지 않는다. 그는 사랑의 과정 속에서 겪는 각 사건들에 대해 자신만의 분석을 곁들인다. 철학 선생이 쓴 책이라 어렵겠구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번역을 잘 한 탓에 어렵지 않다. 오히려 "내 마음이 이런 거였는데.."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러브 스토리는 결말은 '결국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 이다.' 하지만 이 책은 시작부터가 라비와 커스틴의 결혼 이야기이다. 책은 그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짧게 소개한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둘의 결혼 생활을 이야기한다. 이때부터 알랭 드 보통은 사람들이 부부라는 계약을 맺고 살아갈 때 느끼는 심리적 변화와 문제들을 다룬다. 작가는 결혼의 결정, 아기를 낳고, 집안에 경제적 문제와 서로를 향한 비난,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분석해서는 안될 것 같은 섹스와 외도 등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그리고, 건조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특히나 그는 사랑을 하며 겪는 심리적 불안, 공포, 이기심 들을 무서우리만큼 세세히 기록한다.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라비에게 투영하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커스틴에 투영하게 된다. 그것들은 내가 느꼈던 감정이기에 혹시나 나의 사랑이야기를 이 작가가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이 생각은 나의 사랑을 보편화한다. '나뿐만 아니라 라비도 그렇구나.' '내 파트너뿐만 아니라 커스틴도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책은 나에게 관계가 깨질까 봐 느끼는 나의 불안과 공포는 당연한 것이라고 위로한다. 내 사랑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슬퍼하지 말자. 그들처럼 관계를 잘 지켜내자. 하고 위로한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위로받기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더 들었다. 처음에는 위로가 되었다. 나는 책의 내용을 통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정당화하려 했다.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고, 단지 지나가는 삶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에게 했던 나의 비이성적이고 모욕적인 비난은 나의 트라우마를 그녀가 건드여 나의 불안과 공포가 표현된 것이고, 이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보편적인 일로 만들려 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지키려 했고, 그녀를 철학적 사유가 없는 감정적인 존재로 깎아내리려 하고 있었다.
그게 비겁하게 느껴졌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는 커스틴이 아니다. 그녀가 어떤 마음에 나에게 그 상황에서 그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속내를 다 밝히기 전까지는. 그래서 그녀를 커스틴에 투영하지 않아야 한다. 그녀를 커스틴에 투영하여 보편적이었던 사람, 그저 삶의 지나가는 과정의 일부분으로만 치부하기에 그녀는 나에게 너무나 특별했다. 그녀는 책 속에 있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나의 경험으로 만난 사람이다.
그는 이제 막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간접적인 방식은 아니다. 즉 설교를 들어서도, 선택권이 없거나 전통에 짓눌려 사회적 관행을 수종적으로 착실히 이행해서도 아니다. 그는 가장 믿을 만하고 효과적인 수단으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나쁜 행동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몸소 탐험해보는 기회를 얻고 나서 말이다. (232P)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사랑에 대한 감정과 불안, 두려움을 정말로 잘 표현했으며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나는 위로를 거절했다. 나의 사랑은 특별하게 남기고 싶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