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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Oct 03. 2016

하루키의 여행 블로그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내가 읽었던 여행 책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20대의 나의 목표가 일 년에 한 번씩은 외국 여행을 나가자였을 정도로. 여행책도 좋아한다. 여행 안내서도 집에 10권가량 있고, 워킹 홀리데이에 관한 책과 여행기에 관한 책들도 몇 권 있다. 그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들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과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이다.

호주에 있을 적에 친한 동생이 알랭 드 보통의 책「여행의 기술」을 보내 주었다. 당시에는 온라인 서점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때라 타지에서 한글로 쓰인 책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난 한글로 쓰인 그 책을 몇 번이고 읽었다. 이 책은 여행 에세이가 아니었다. 여행에 대한 작가의 사색과 철학이 담긴 책이었다. 덕분에 스무 살 어린 나이에 타국에서 어떤 시선을 가지고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난 뒤, 나의 호주 생활은 더욱더 풍성해졌다.


군대에 있을 적에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이라는 여행기를 읽었다. 빌 브라이슨의 위트 넘치는 문장력과 모두가 뻔히 알 법한 내용이 아닌 독특한 시선으로 써진 책이다. 덕분에 나는 힘든 군생활을 (사실 나는 힘들지는 않았지만....)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잘 마무리하게 되었다.


30대가 되었다. 이제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게 오히려 여행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이런 때에 여행 에세이를 한 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서점을 지나다 평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발견했다.


하루키의 여행 블로그


나는 처음에 이 책이 하루키가 라오스를 다녀온 후에 그에 관한 책을 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라오스에 대한 이야기는 159페이지에서야 시작이 되고, 고작 20페이지를 조금 넘기는 분량밖에 없다. 이 책은 하루키가 그동안 잡지사에 실었던 여행기를 묶은 책이다. 여행기들은 비교적 대중적인 매체에 쓰인 글이다. 그렇기에 굉장히 가볍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알랭 드 보통이나 빌 브라이슨처럼 책을 내기 위하여 쓴 여행기가 아니기에 깊이 있는 여행의 사색이나 독특한 시선을 원한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실내는 청결하고 널찍하며, 맛있는 음식을 팔고, 음료 추가 주문도 꼬박꼬박 받으러 온다. 서비스도 빈틈없다. 여자 친구들끼리 분위기를 잡고서 뉴욕의 나이트라이프를 즐기기에는 최적 일지 모른다. 그러면서 가격은 합리적이고, 연주 수준도 만족스러우며, 음향도 재즈를 듣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곳도 추천합니다. (129p)


작가는 그 여행지를 여행하면서 느끼거나 생각한 것보다는 주로 보고 듣고 맛보고 들은 것들 위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는 여행지의 유명 장소를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이런 점들을 보면,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행 블로그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꾸몄겠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하루키의 여행이란


특히 그는 시각을 문자화 하는데 탁월함을 보여준다. 그가 맛있게 먹었던 스테이크나 특별한 요리들에 대해서는 단순히 '맛있다, 다시 먹고 싶은 맛은 아니다'정도로만 표현한다. 하지만 시각적인 부분은 사진을 보면서 표현하듯 세세하다. 그의 글을 읽으면 그곳의 풍경이 충분히 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가 여행에 대한 글을 쓸 때 시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여행 시 시선의 중요함을 이렇게 표현한다.

루이프라방의 사원을 느긋하게 도보로 돌아보며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즉 '평소(일본에서 살 때) 우리는 그렇게 주의 깊게 사물을 보지 않는구나'란 사실이다.... 무언가 한 가지를 찬찬히 살펴보기에는 우리 생활이 너무나 바쁘다. 진정한 자신의 눈으로 대상을 본다는 것이 의떤 의미인지조차 차츰 잊어가고 있다... 그런데 루이프라방에서는... 다양한 대상을 선입견 없이 관찰하고 자발적으로 상상하고 (때로는 망상하고), 앞뒤를 가늠해 큰 그림을 그리고 취사선택해야 한다. (174-175p)


하루키의 여행은 낯선 곳에서 대상을 찬찬히 관찰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놀라워하며 그것을 인지하는 기쁨이 있는 것이다.


매일이 여행이라면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프로그램 참여로 미국에 갔다. 첫째 날 호텔에서 나와 혼자 산책을 하다가 수영장 옆에 심어져 있는 나무를 봤다. 그 나무의 몸통은 흰색이었다. 내가 알기로, 나무는 갈색이어야 하는데, 흰색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미국의 나무는 흰색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며칠 뒤, 한국에 돌아와 내 방 창문 밖 나무를 보았다. 그 나무의 색은 흰색이었다. 나무는 예전부터 흰색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알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머릿속에 '나무는 갈색이다'라는 선입견이 눈에 보이는대로 색을 구별하는 것을 차단했다.

여행을 가면 일상에서는 신경 쓰지도 않을 일들을 관찰하고, 무엇인가 다른 점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일반적인 건물, 나무, 신호등, 표지판, 사람들, 지하철역 등 평소의 삶에서도 매일 보고 겪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낯선 곳이기에 우리는 특별함을 부여하고 그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만약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동안 주변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것들을 발견한 놀라움과 인지하였다는 기쁨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 평범하고 별나지도 않은 이 시간을 여행 왔다는 기분으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일상적이고 매일 보던 사물들을 관찰하고 매일 만나던 사람들을 선입견 없는 눈으로 만난다면 여행 온 것처럼 두근대는 하루를 살아볼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 지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 당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로든 떠나보세요. (2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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