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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호근미학 Jul 12. 2017

「구원의 미술관」, 그리고 받아들이는 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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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의 미학 책

나는 미학에 관심이 많다. 아름다움이란 것에 대한 개인적인 미적 가치의 향유와 예술적 감수성에 논하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 몇 날 며칠 길게는 몇 년을 걸쳐 만든 작품의 숨겨진 뜻을 알아차리는 그 과정은 지적 황홀감에 빠지게 한다. 얼마 전 강상중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검색을 해보니 강상중의 미학 책이 올해 발간되었다고 했다. 책의 제목은 「구원의 미술관」이었다. 이 작가가 미학에 대한 책을 낸 적을 본 적이 없는데 하는 마음에 알아보니, 강상중 씨는 2009년부터 2년 동안 NHK 방송의 <일요 미술관>의 진행자였다고 한다. 어쩌면 내가 아는 어떤 미학 책보다도 심도 있고, 개인적인 의견이 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구원의 미술관」, 그리고 받아들이는 힘에 관하여


「구원의 미술관」은 강상중 씨가 NHK 방송의 <일요 미술관>에서 진행했던 내용들을 엮은 책이라 한다. 이 대목을 보면서 떠오른 것이 예전 조영남 씨와 김정운 교수가 진행하던 <명작 스캔들>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매주 예술 작품 하나를 택해, 이에 얽힌 이야기들, 즉 스캔들을 소개했다. 그 스캔들들을 알고 나서 작품을 감상하면 단순히 시각이나 청각, 일차원적으로만 다가오던 작품에 감동을 느끼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그와 아주 비슷하다. 각 주제들에 맞게 두 세편의 작품을 선정하고 그 작품에 담긴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작품에 담긴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그 작품에 대한 감동을 얻게 된다. 



현실에 대한 물음 그리고 대답


이 책이 쓰인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원전 사태 이후이다. 작가는 상실감이 가득 찬 일본의 상황에서 과연 회화를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주시하라는 주제를 갖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의 원 제목은 바로, 「당신은 누구야? 나는 여기 있어」(あなたは誰?私はここにいる)이다. 


원 제목처럼 작가는 여러 가지의 상황 가운데서 작가들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것을 작품에 반영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각각의 독특한 상황 속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들이 모두 달랐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했다는 이야기는 소개된 그림을 이해하는 데 충분한 재미를 준다. 가끔은 논리적이기도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하는 비논리에 감탄을 하기도 한다. 

브뤼헐의 <교수대 위의 까치>
하지만 브뤼헐 같은 높은 정신성을 가진 작가가 유작에 가까운 만년의 작품에 그런 심술궂은 의도를 숨겨놓았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브뤼헐은 이 그림을 통해 인간에게는 피할 수 없고 싫든 좋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죽음이 있지만, 동시에 재생도 있으며 희망도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려 했다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제멋대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까치는 브뤼헐 바로 그 자신이 아니었을까요. -6장 '죽음과 재생' 中-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내가 어릴 적 IMF가 터졌을 때,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로 가장 어려운 경제 상황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한국전쟁 때보다는 나은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님은 경제가 너무 어렵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언론은 매일 가장 좋았을 적의 우리나라 경제와 비교하며 현 상황은 좋지 않다며 평가했고,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발생하고, 전쟁이 곧 일어날 것만 같은 상황을 방송해 주었다. 그런 상황은 10년이 지난 지금, 전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경제는 어렵고, 테러가 발생하며 극심한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가깝게는 취업하기가 어렵고, 점점 사회는 개인화되어가며, 이념 싸움을 넘어서 이제는 아무 생각이 없는 시대에 가까워졌다. 이런 상황을 누군가는 절망적이라고 평가한다. 아마도 세상은 편했을 때가 없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개인에게 있어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우리가 함부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사람들이 우리보다 힘들었다고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지금의 입시지옥과 취업난을 겪고 있는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힘들지 않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직업과 안전이 있을 지라도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쟁이나 궁핍이 오히려 견디기 쉬운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아마 이 책에서 소개된 많은 화가들도, 그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시기를 살았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들은 나는 여기에, 이렇게 서있다며 캔버스에 물감을 칠한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았고 그 신념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나는 상황을 부정할 때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너무 괴롭지만, 그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평안을 얻었던 경험을 많이 했다. 상황은 언젠가는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리고 그것에 대해 내가 어떤 신념과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이다.


구원의 미술관_강상중 미술 에세이 youtube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S-y4HKTR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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